
올해 대우건설은 주가와 지배구조 등 대내외적으로 격랑에 휩싸인 한 해였다. 체코 원전 등 대형 수주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하면서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내부적으론 대우건설 인수를 주도했던 중흥그룹 창업주 정창선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룹과 대우건설의 경영 승계 구도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원주 부회장(대우건설 회장)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대우건설은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된 데 이어 주요 사업본부장들도 새 얼굴로 바뀌면서 경영 연속성과 조직 안정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대우건설은 올 들어 건설주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종목이다. 연초 3740원이던 주가는 4월 장중 4만350원까지 10배 넘게 뛰었다. 하지만 축포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점 이후 상승분을 대거 반납하며 10월 들어 1만5000원대까지 내려왔다. 연초와 비교하면 여전히 네 배 넘는 수준이지만 고점에 주식을 산 투자자라면 평가액이 60% 넘게 줄어든 셈이다.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대우건설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었다. 주택 경기 침체 속에 원가 상승 부담에 시달리던 건설사에서 원전·액화천연가스(LNG)·에너지 인프라를 성장축으로 삼을 기업으로 재평가받았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등 해외 대형 사업에 대한 기대감에 중동 재건 사업 참여 가능성까지 더해졌다.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도 초기 투자심리에 불을 지폈다. 대우건설은 3월 4일 이사회에서 보유 중인 자사주 471만5000주를 소각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종가 기준 약 420억원 규모다.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취지가 시장에 전달된 것이다.
지난해 4분기 1조원이 넘는 대규모 손실을 반영한 뒤 올해 실적이 반등한 점도 투자심리에 힘을 보탰다. 대우건설은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255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68.9% 늘어난 데다 시장 전망치도 웃돌았다. 2분기도 견조한 실적이 이어지면서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09% 늘어난 4879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해외 플랜트 현장의 공정 지연과 원가 부담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업장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이다. 대우건설은 팀코리아의 시공 주관사로 참여하고 있지만 지난 8월 2분기 실적 발표 시점에도 시공 본계약은 체결 전이었고 회사와 업계는 연내 타결을 목표로 세부 협상을 이어가는 단계로 설명했다. 본계약이 맺어져야 수주로 잡히고 이후 공사 진행률에 따라 매출과 이익이 인식된다.
주가가 고점에서 급격히 밀린 것도 이런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시장의 관심이 ‘어떤 사업을 따낼 것인가’에서 ‘언제 계약을 맺고 얼마나 이익을 남길 것인가’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대우건설은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연간 신규 수주 목표를 당초 18조원에서 27조원으로 높여 잡았다. 회사는 파푸아뉴기니 LNG와 모잠비크 로부마 LNG 등의 수주 가능성이 가시화돼 목표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키움증권은 대우건설의 올해 3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에 부합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연간 수주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고 봤다. 신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존 파이프라인들 중 중동 전쟁에 따른 수요 다각화와 글로벌 전력 수요 증가에 따라 연내 LNG 파이프라인들의 수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면서도 “목표를 채우려면 가덕도 신공항이나 체코 두코바니 원전 등 대형 사업의 계약 체결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투르크메니스탄 미네랄 비료 현장과 모잠비크 Area 1 현장의 진행률 상승이 예상보다 더딘 것으로 파악되며 나이지리아 T7 공기연장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일부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국내 주택사업에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대우건설은 서울 성수전략정비구역의 핵심 사업지인 성수4지구 재개발 수주전에 뛰어들었지만 롯데건설과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롯데는 ‘청담르엘’ 같은 강남권 확실한 랜드마크가 있지만 대우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중흥그룹을 재계 20위(자산 기준)로 키운 창업주 정창선 회장이 지난 2월 별세했다. 정 회장이 그룹의 외형을 키웠다면 이제는 장남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중흥건설그룹 부회장)을 중심으로 지배구조와 경영체제를 재편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변화는 공식화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29일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며 중흥그룹의 동일인을 고 정창선 회장에서 정원주 회장으로 변경했다. 창업주 별세에 따라 동일인 판단기준에 맞춰 그룹을 대표하는 총수를 바꾼 것이다. 정원주 회장은 이미 중흥토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흥토건은 대우건설 지분 40.6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오너 3세의 경영 참여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정 회장의 장남인 정정길 상무는 대우건설 해외사업단에서 미주 개발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1998년생인 정 상무는 2021년 중흥건설에 입사한 뒤 2022년 대우건설 전략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2023년 상무B, 2025년 상무A로 고속 승진했다. 장녀 정서윤 씨도 올해 3월 말 미국 법인 합류를 앞두고 정 회장의 방미 일정에 동행해 현지 개발사업 파트너들과 만났다. 3세 경영인인 남매가 대우건설의 해외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영진 교체와 조직 개편도 이어졌다. 고 정창선 회장의 사위이자 정 회장의 매형인 김보현 전 대우건설 대표가 임기를 1년 넘게 남긴 지난 8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우건설은 비상경영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성장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리더십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의 퇴진과 후임 인사를 정원주 회장 중심으로 경영체제를 재편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새 CEO로 선임된 이강석 대표는 대우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대우맨’이다. 다만 인사 과정은 이례적이었다. 대우건설의 임원 직급은 상무B·상무A·전무·부사장·사장 순으로 이어지는데 이 대표는 상무A에서 전무를 거치지 않고 부사장으로 바로 승진한 뒤 지난 10월 2일 대표이사에 올랐다. 전무급 임원들을 건너뛴 파격 인사의 배경을 두고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변화는 대표 교체에 그치지 않았다. 이 대표 취임 엿새 만인 지난 10월 8일 건축·토목·플랜트 등 3대 사업본부장이 모두 바뀌었고 신규 임원 발탁 규모도 전년보다 46.2% 늘었다. 경영진과 핵심 사업부의 지휘부가 잇따라 교체하면서 조직 재정비의 폭도 커졌다. 해외 대형 수주와 국내 정비사업 등 주요 과제를 앞둔 대우건설이 조직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새 경영체제의 성과를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 회장의 경영 능력을 둘러싼 우려의 시각도 있다. 정 회장은 1992년 중흥건설에 입사해 사장까지 지냈고 계열사 경영에도 참여했지만 해외 사업 비중이 큰 대형 종합건설사를 직접 이끈 경험은 대우건설이 처음이다. 대우건설이 원전과 LNG 플랜트 등 해외 사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은 상황에서 새 경영체제가 글로벌 수주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릴지가 관심사다.
이런 가운데 재무 부담도 가볍지 않다. 대우건설의 2026년 상반기 부채비율은 266.5%로 집계됐다. 최근 체질개선으로 약 18%포인트 낮아졌지만 현대건설 등 주요 대형 건설사의 150~200%대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분 승계 작업도 끝나지 않았다. 창업주의 별도 유언장이 없었던 만큼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인으로서 지분을 나눠 받았고 상속세 신고 등 세무 절차는 마무리했다. 다만 중흥건설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 정리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중흥건설 지분이 어떻게 정리되는지가 그룹 지배구조의 다음 변수다.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가 확대되는 가운데 대표 교체와 조직 개편까지 겹쳤다. 새 경영진이 조직의 연속성을 확보하면서 해외 수주와 재무 건전성 개선이라는 과제를 함께 풀어낼 수 있을지가 정원주 체제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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