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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는 괴물"…괴짜가 만든 조명, 100년간 도시 밝히다

입력 2026-10-15 17:10   수정 2026-10-16 02:37


덴마크는 여전히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다. 오래된 궁전과 유서 깊은 호텔 연회장에는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지금도 매달려 있다. 유리 조각 수천 개가 반짝이는 빛을 내며 충실하게 한 나라 왕실의 영광과 부를 과시한다.

궁전을 조금만 벗어나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정집 식탁 위, 시청 로비, 도서관 열람석, 동네 카페. 그 천장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PH 조명이 당연하다는 듯 걸려 있다.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모던 디자인의 상징이다. 왕실이 있고 궁전에는 샹들리에가 걸린 국가가 어떻게 ‘모던의 나라’가 됐을까. 사실 이 역사에는 평생을 걸고 제도권에 저항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빛의 폭력’에 저항한 남자

덴마크 조명 역사를 바꿔놓은 건 조명 디자이너 포울 헤닝센(PH·Poul Henningsen)이다. 루이스폴센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진 헤닝센은 언론인이자 건축 비평가이면서 반(反)파시즘 운동가였다. 1920년대 문화비평지 ‘크리티스크 레비(Kritisk Revy)’ 편집자로 활동할 당시 그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던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괴물’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비판한 내용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전구라는 광원이 등장했는데도 촛불 시대 샹들리에에 전구만 갈아 끼우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둘째, 천박한 과시다. 샹들리에는 빛을 밝히는 도구보다 부와 계급을 드러내는 장식물에 가까웠다고 봤다. 셋째, 빛의 폭력이다. 사방으로 퍼지는 강한 빛은 눈을 피로하게 하고 실내의 아늑함을 해쳤다. 흥미롭게도 헤닝센이 젊은 시절 처음 의뢰받아 제작한 조명은 놋쇠로 제작한 여덟 구짜리 전통 샹들리에였다. 훗날 거장이 된 그는 이 작품을 다시 마주하고는 “미친 자전거 수리공이 대충 이어 붙인 괴물 같다”며 스스로에게도 독설을 날렸다고 전해진다.

당시 조명업계가 직면한 문제는 백열전구의 눈부심이었다. 양초와 오일램프보다 훨씬 밝아진 전구를 그대로 노출하면 눈이 불편했고, 갓으로 가리면 빛의 효율이 떨어졌다. 특히 밤이 긴 북유럽에서는 밝기와 편안함을 동시에 확보하는 일이 중요했다.

헤닝센이 개발한 해법은 여러 겹의 갓을 이용한 PH 조명이었다. 대수 나선 곡선을 응용해 광원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하고, 갓의 곡면에 반사된 빛이 아래로 부드럽게 퍼지도록 설계했다. 일부 제품에는 갓 안쪽에 붉은색 계열을 적용해 빛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가 아니라 눈부심을 줄이기 위한 광학적 계산의 결과였다.

그가 추구한 것은 누구나 편안한 빛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부유층의 저택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식탁에도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 조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PH 조명은 디자인인 동시에 일종의 시각적 복지에 대한 제안이었다.

PH 조명에 삼중 갓 시스템이 등장한 것은 1926년이다. 전년도 프랑스 파리 국제장식미술전에서 금메달을 받은 ‘파리 램프’를 발전시킨 결과였다. 헤닝센이 편집한 크리티스크 레비가 창간된 것도 같은 해였다. 글로 기존 조명 문화를 비판하면서 제품으로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100년을 맞은 PH 조명
올해는 그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다. 루이스폴센은 이를 기념하는 컬렉션을 선보였고 최근 서울에 새로운 쇼룸을 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PH 조명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헤닝센이 샹들리에를 비판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광원에 낡은 형태를 그대로 적용한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루이스폴센을 비롯한 여러 조명 브랜드는 백열전구 시대에 설계된 디자인을 LED(발광다이오드) 광원과 결합해 생산한다. 헤닝센의 논리를 적용하면 과거 형태를 유지하는 일이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을 수 있다.

물론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PH 조명 시리즈에는 LED와 충전 배터리를 장착한 무선 포터블 제품이 나왔다. 전선의 제약이 사라지자 조명을 놓는 공간이 넓어졌다. 루이스폴센과 플로스, 아르테미데 등은 광원을 천장과 벽에 숨기고 빛만 드러내는 건축화 조명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 프리미엄 아파트의 특화 설계에서도 이들 브랜드의 조명 솔루션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조명이 독립된 장식품을 넘어 공간 설계의 일부가 되고 있다.

더 큰 아이러니는 가격과 소비 방식에 있다. 헤닝센은 부와 계급을 과시하는 샹들리에에 반대했지만 오늘날 그의 조명은 고가 디자인 상품이 됐다. 작은 펜던트조차 상당한 가격에 판매되고 대형 아티초크 조명은 수천만원에 이른다. 일부 소비자에게 PH 조명은 여전히 취향과 경제력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헤닝센이 비판한 샹들리에의 역할을 그의 작품이 일부 이어받은 셈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설계 원칙이다. 광원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반사광으로 공간을 밝히는 방식은 지금도 PH 조명의 핵심이다. 유행과 가격은 달라졌지만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빛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는 유지되고 있다.

헤닝센의 유산은 특정 조명의 형태에만 있지 않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기존 디자인을 의심하고, 장식과 과시보다 사용자의 편안함을 앞세운 태도에 있다. PH 조명 탄생 100주년을 맞아 되새길 것은 그가 제작한 램프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다. 그 램프가 처음 무엇에 반대하며 등장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조수민 Wave 칼럼니스트(조명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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