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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빚내서 마련하는 여윳돈

입력 2026-10-15 17:50   수정 2026-10-16 00:28

빚내서 여윳돈을 마련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혹시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배우자에게 허락받지 않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가뜩이나 빚이 많아 이자 부담이 클 텐데 이자는 걱정하지 말란다. 대출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로 여윳돈을 안전하게 굴리면서도 필요할 때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단다. 이런 사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지난달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날 세수를 반영해 전년 대비 12.8% 증가한 821조원의 슈퍼예산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목을 끄는 것은 예산안과 별도로 신설하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이다. 얼핏 기금이라고 하니 쓰고 남는 ‘초과’ 세수가 재원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정부는 새로운 개념을 꺼내 들었다. 지난 10년간의 세수 추세를 웃도는 금액을 ‘추가’ 세수로 정의하고 이를 기금으로 적립하겠다는 것이다.

추가 세수를 기금으로 떼어놓으니 정작 슈퍼예산을 감당할 수 없어 세수가 올해보다 200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도 정부는 106조원의 빚을 새로 지기로 했다. 미래대응기금 회계상 재원이 추가 세수이니 빚과 상관없을 것 같지만, 이 기금을 신설하지 않았다면 지지 않아도 될 빚을 지는 것이니 사실상 빚으로 마련하는 셈이다.

미래대응기금 일부는 당장 내년부터 기금 사업으로 집행하고 나머지는 ‘여유 자금’으로 남겨놓는다고 한다.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분야 기금 사업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진행 중인 예산 사업을 옮기는 것이므로 기금 신설의 핵심은 여유 자금에 있다. 정부는 이런 여유 자금을 정책적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데 쓰겠다고 한다. 추가경정예산 같은 국회 승인 절차 없이 정부 재량으로 지출할 수 있는 쌈짓돈이다. 여유 자금은 104조원이고 신규 부채는 106조원이니 여유 자금 전체를 빚으로 마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활용해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빚을 내 여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국가채무는 2026년 기준 1414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1.6% 수준이다. 이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문제는 증가 속도에 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GDP 대비 35.4%이던 국가채무 비율은 불과 7년 만에 16%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50년간 총지출 증가율은 총수입 증가율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급속한 고령화로 복지 지출과 공적연금 수급자가 늘어 의무 지출이 크게 증가하지만 저출생에 따른 노동력 감소로 세수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피하기 어려운 미래의 현실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 국가채무 비율이 20년 이내에 GDP 대비 10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국가부채가 커졌을 때 닥칠 문제는 지금의 프랑스가 잘 보여준다. 프랑스는 지난해 재정적자가 GDP 대비 5.1%, 국가부채가 115.6%에 달했다. 올해도 재정적자가 5.4%로 전망되는 데다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5%대로 올라섰다. 국채 금리가 이렇게 오르면 정부는 이자를 갚기 위해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국채 금리가 다시 오르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국민을 위해 써야 할 돈이 이자를 갚는 데로 새는 것이다.

프랑스의 길을 가던 한국에 예상치 못한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급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행운에 불과하며 길어야 몇 년에 그칠 일시적 현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로또 당첨금을 다 쓰고도 모자라 오히려 빚을 지기보다는 착실히 빚을 갚아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쉽고도 안전한, 그래서 확실한 미래 대응이다.

말 그대로 여유 자금은 쓰고 남아 여유가 있는 돈이어야 한다. 빚내서 여윳돈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잘 관리하고 쓴다고 할지라도 미래에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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