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마흔 살이 된 한국 라면 브랜드가 있다. 농심 신라면과 팔도 도시락이다. 신라면이 한국의 매운맛을 세계에 알리는 동안, 사각 용기에 담긴 도시락은 러시아인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러시아에서 팔린 도시락은 지난해 말까지 80억 개를 넘었다. 국내 누적 판매량 8억 개의 열 배다.
1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1986년 출시된 도시락은 팔도의 첫 용기면이다. 원형 용기가 주류였던 당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각 용기를 적용했다. 바닥이 넓어 쉽게 넘어지지 않고, 별도 뚜껑과 얇은 면발을 갖춘 점이 특징이었다.
러시아 진출은 예상 밖의 경로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초 부산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던 러시아 선원과 보따리상을 통해 도시락이 알려졌다. 팔도는 1992년 수출을 시작했고, 수요가 늘자 1997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무소를 열었다.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에도 사업을 이어가며 시베리아와 우랄 지역으로 판매망을 넓혔다.
판매량이 연간 2억 개 수준으로 늘어난 2000년대에는 현지 생산시설을 마련했다. 2005년 모스크바 인근 라멘스코예, 2010년 리잔에 공장을 세웠다. 제품도 현지 입맛과 생활 방식에 맞췄다. 치킨·버섯·새우맛을 개발하고, 기차 등에서 별도 식기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포크를 넣었다. 러시아 소비자들이 라면에 마요네즈를 곁들여 먹는 데 착안해 마요네즈 소스를 별첨한 제품도 내놨다.

팔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지역 판매·유통 법인인 도시락루스의 매출은 약 5000억원이었다. 러시아 판매시점 정보기업 에보토르가 올해 발표한 분석에서 도시락은 지난해 러시아 비체인 소매점 즉석면 판매 물량의 54%를 차지했다. 금액 기준 점유율도 51%였다. 전체 러시아 즉석면 시장 점유율과는 구분해야 하는 수치다.
다음 시장은 중국이다. 팔도 집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중국 내 도시락 판매량은 약 4000만 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다섯 배에 달했다. 팔도는 미역국맛 등 현지 취향을 겨냥한 제품을 추가하고 라이브방송과 전자상거래로 판매 채널을 넓히고 있다.

올해는 국내 식품업계 장수 브랜드의 기념일도 겹친다. 도시락과 같은 1986년 출시된 신라면과 월드콘은 40주년, 1996년 출시된 CJ제일제당 햇반은 30주년을 맞았다. 내년에는 1987년 국내에 나온 포카리스웨트가 40주년이 된다.
이 가운데 도시락의 성장 경로는 독특하다. 국내에서 만든 용기 형태가 러시아의 이동·식사 문화와 맞아떨어졌고, 현지 생산과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출시 40년을 맞은 지금은 러시아에서 쌓은 경험을 중국 시장으로 옮기는 단계에 들어섰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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