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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2026년 미국의 사형 생중계

입력 2026-10-18 07:03  

[특파원 시선] 2026년 미국의 사형 생중계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에서 예기치 못한 일을 맞닥뜨리는 데 익숙해졌다 싶다가도 한 번씩 시대의 실감이 크게 흐려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총기난사범 사형을 생중계하겠다는 미 국방부의 발표를 접했을 때가 그런 순간입니다.
2026년에 이란도 아니고 아프가니스탄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미국에서 사형을 생중계한다니, 복잡한 수식도 아닌데 머릿속에 금방 입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공개 처형은 1930년대에 사라졌습니다. 1936년 8월 14일 켄터키주의 오웬스보로에서 70세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20대 흑인 남성 레이니 베세이가 공개 교수형에 처해진 게 계기가 됐습니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에게 저지른 범죄라 극형에 대한 여론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살인죄로 전기의자형에 처하면 너무 형이 가볍다는 반발 속에 성폭행범은 교수형에 처하도록 한 해묵은 법률 조항이 동원됐다고 합니다.
집행 시간은 오전 5시였고 무려 2만명의 군중이 모였습니다. 군중이 분명히 볼 수 있도록 높게 설치된 야외 교수대 주변에서 밤을 새우며 기다린 이들도 있었고 밤새 파티를 벌이다 술이 깨지 않은 채로 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상인들이 현장에서 팝콘과 콜라를 팔았다고 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축제 분위기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사형 집행이 대규모 군중의 오락거리가 돼버리면서 결국 공개처형은 미국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후에도 몇차례 소규모의 공개처형이 있었지만 2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사건의 충격이 커 대개 베세이의 사형이 마지막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나서 공개 처형이 다시 미국에 등장했습니다. 텍사스주 후드기지에서 총기를 난사해 13명을 숨지게 한 이슬람 신자 니달 하산을 12월 3일 총살하고 이를 생중계한다는 게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구상이었습니다.
범죄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 범인도 대중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게 헤그세스 장관의 주장입니다. 법집행에 대한 보수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총살형 생중계로 분명히 시각화해 보여주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겼습니다.
한 세기를 순식간에 거슬러 올라간 사형 생중계 계획에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독재정권에서나 이어지고 있는 공개 처형이 미국에서 거론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탄식부터 하산을 순교자로 만들어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확장과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습니다.
특정 영상을 수억, 수십억명이 볼 수 있게 된 시대에 어린이들은 물론 원치 않는 이들의 시청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강했습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여론조사에서 80%가 생중계에 반대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총살형은 집행하더라도 생중계는 하지 않겠다고 물러섰습니다. 중간선거 패배 우려로 마음이 편치 않은 와중에 하산의 사형 생중계가 더 이상 정치쟁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1849년 11월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군중의 환호 속에 집행된 공개처형을 목격하고는 "동일한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일 중에 공개처형만큼 파괴적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없다고 확신한다. 공개처형의 사악함에 경악했고 충격을 받았다"고 썼습니다.
어떤 일들은 직접 겪어 보지 않아도 먼저 겪은 이들의 경고로 충분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로 생중계는 없던 일이 됐지만 WP의 여론조사에서 18%는 생중계에 찬성했다는 사실은 마음 한구석을 편치 않게 합니다.
nar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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