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회사 요청에 따라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면서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리멤버 커뮤니티를 통해 "필살기 없이 연차만 차게 된 '물경력 직원'"이라고 자평했다. 사업개발 직무로 입사해 마케팅·운영 업무를 담당했다는 한 직장인도 "시키는 건 다 하는데 깊이도 알맹이도 없는 게 문제"라고 털어놨다. 면접에서 "경력이 이것저것 섞여 애매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는 또 다른 직장인의 사연엔 500여개에 이르는 '공감'이 달렸다. 이는 AI 확산과 채용 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각종 보고서 초안을 잡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회의를 요약하는 일은 여러 업무를 경험한 직장인의 대표적인 강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AI를 활용해 같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한 직장인은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AI를 잘 쓰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가 지난 6월 AI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 HR·현업 재직자 400명을 조사한 결과 38.5%는 "내 직무는 3년 안에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답했다. AI를 전사적으로 내재화한 기업에서는 이 비율이 41.6%에 달했지만 '미도입 기업'의 경우 8.3%에 그쳤다. 자신의 직무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미도입 기업과 비교해 약 5배나 됐다.
기업이 인재를 찾는 순서만 봐도 올라운더들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추세가 확인된다. 과거엔 공채를 통해 사람을 먼저 뽑은 다음 여러 부서를 거치도록 하면서 인재를 키워냈다. 하지만 최근엔 공채 대신 공석에 맞춰 수시채용 형태로 사람을 뽑는다. '사람'보다 '자리'를 먼저 보는 것. 여러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잠재력보다 당장 필요한 역량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해진 셈이다.
이는 리멤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차 기획자'나 '마케터'라는 직함만으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성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실제 이직 제안을 받은 직장인들에게서 이 같은 현상이 수치로 확인됐다. 리멤버 내 공개 프로필 중 경력 10년 이상 기획 직군을 보면 최근 1년간 기업·헤드헌터에게서 직접 스카웃 제안을 받은 직장인들이 기재한 스킬 수는 7개(중앙값 기준)로 나타났다. 제안을 받지 못한 인재들이 적은 스킬은 3개에 불과했다. '경력 10년'이란 사실만으로는 기업들이 찾는 매력적인 인재임을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리멤버 관계자는 "제안을 받은 사람들의 프로필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는데 시장은 직함보다 그 아래 적힌 '하는 일'을 먼저 읽는다"며 "기획 10년 차라는 소개가 힘을 잃는 이유는 경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경력에 어떤 일이었는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멤버 커뮤니티에서도 "올라운더 자리에서 관심 가는 분야를 지켜보고 한두 가지에 집중해 전문성을 키우라"는 조언이 적지 않다. 단순 '기획자' 대신 '신사업 기획을 하는 사람', '마케터' 대신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 여러 일을 해 본 경험은 해당 직무를 더 넓은 시야로 수행하는 밑천이 되는 만큼 이를 활용하는 것은 필수다.
안경옥 에버브레인써치 대표는 "기업은 여러 직무 전문성을 갖춘 제너럴리스트를 찾지만 성과 없이 짧게 직무만 바꿔 온 경력은 예외"라며 "기업이 헤드헌터를 찾는 건 지금 회사에 없는 역량이 필요해서인데 특히 해당 스킬로 성과를 내 본 사람을 찾는다.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방법으로 일했는지까지 같이 적으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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