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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보다 더 좋아"…4가지 색 '나만의 제주'

입력 2026-10-19 16:00  

제주에 오면 이제 바다부터 찾지 않는다. 탁 트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눈으로만 훑고 지나가는 여행이 아쉬워졌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 대신 손끝으로 흙의 온도를 느끼고, 코끝으로 귤 향을 맡고, 온몸으로 숲길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싶어졌다.

몸을 움직이고 무언가를 직접 만들 때, 제주는 '나만의 제주'가 된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마음인가. 그 마음에 따라 골라 볼 수 있는, 직접 겪고 만지는 4가지 제주의 순간을 정리했다.

비우는 마음, 흙을 빚다

어떤 날은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한 가지에만 몰두하고 싶다. 머릿속을 비우는 데는 서귀포의 ‘수작도자기공방’만 한 곳이 없다. 창으로 드는 햇살을 조명 삼아 차가운 흙가래를 둥글게 쌓아 올리고 다듬는다.

흙은 손끝의 미세한 힘에도 쉽게 기울고 모양을 바꾼다. 반듯하게 만들려 애쓸수록 형태가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그럴 땐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일그러지면 다시 어루만져 모양을 잡으면 된다.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내 손으로 하나뿐인 그릇을 빚어 가는 느릿한 시간이야말로 진짜 힐링이다.?

기다리는 마음, 달큰하게 부풀다

제주의 시간을 맛으로 남기고 싶다면 남원읍 하례리로 가 보자. 마을 여성들이 뜻을 모아 만든 하례감귤점빵협동조합에는 향토음식 '상웨빵'이 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쌀 대신 밀가루나 메밀 반죽을 막걸리로 발효해 쪄낸 빵이다. '서리꽃처럼 희고 고운 떡'이라는 뜻의 '상화떡(霜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이름이 구전되며 '상웨', '상애' 등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죽을 둥글게 빚어 찜기에 올리고 한 시간 남짓 기다리면 호빵만 하게 부풀어 오른다. 빵이 익는 동안에는 풋귤을 얇게 썰어 청을 담근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상웨빵을 반으로 가르면 달큰한 한라봉 소가 흘러나온다. 여기에 직접 담근 풋귤청 한 잔을 곁들이면 입안에 제주의 계절이 들어온다.

맞추는 마음, 말과 함께 걷다

커다란 생명의 보폭에 맞춰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승마는 어떨까. 조천읍 부소오름 자락의 ‘에코 승마아카데미’는 흔한 승마장 트랙이 아니다. 제주 숲길과 계곡, 탁 트인 초원을 말과 함께 걷는다.

제주의 바람을 견디며 자란 '한라마'의 등에 오르면 두 발로 걸을 때와는 다른 높이의 풍경이 펼쳐진다. 귓가에 말발굽 소리가 울리고, 짙은 삼나무 그늘이 머리 위를 스친다. 잘 타지 못해도 괜찮다. 훈련을 거친 말은 누가 타도 편안함을 느낄 만큼 안정적이어서, 초보자도 승마를 즐길 수 있다.

한 생명체와 호흡을 맞추며 숲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제주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내딛는 마음, 거친 길을 달리다

잔잔한 제주보다 강한 자극을 느끼고 싶은 날이 있다. 얌전한 아스팔트 길은 잠시 잊고, 조천읍 ‘너도나도 ATV’에서 흙길과 숲길로 뛰어들어 보자. 너도나도 ATV의 코스는 일반적인 ATV 체험보다 굴곡과 경사가 많다.

처음 핸들을 잡으면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덜컹거리는 구간을 하나씩 지나다 보면 긴장이 풀리고 어느새 속도를 즐기게 된다. 나무 사이 좁은 틈을 빠져나가고, 눈앞에 나타나는 경사로를 치고 오른다. 바람을 가르며 달린 뒤 머릿속에 남는 건 스쳐 간 풍경이 아니다. 거친 길을 내 손으로 뚫고 지나왔다는 감각이다.

가만히 머물며 흙을 매만질 것인가, 따뜻한 빵을 빚으며 웃을 것인가. 아니면 말의 걸음에 몸을 맡기거나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할 것인가. 어떤 선택이든 괜찮다. 눈으로만 담아 두기엔 직접 몸으로 겪고 만져 볼 수 있는 제주의 날들이 너무나도 생생하니까.

바다를 잠시 등지고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오늘의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제주=김은서, 박세영, 차연경, 최지아, 송재현 인턴 기자 / 배경민 한경닷컴 기자 bk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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