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시장에 때아닌 복고(復古) 바람이 분다. 그 문을 활짝 연 것은 단연 롯데칠성음료의 캪틴큐다.
마시면 다음 날 숙취가 없는 술. 이유는 다음 날이 아니라 다다음 날 깨어나기 때문이라는, 전설 같은 농담의 주인공이다. 1980년 출시 당시 700㎖ 한 병 값은 3000원. 소주 한 병이 260원 하던 시절이니 열 배가 넘는, 결코 싸지 않은 술이었다. 그런데도 첫해에만 1000만 병이 팔렸다. 그러나 1991년 럼 원액을 빼고 향료만 남긴 술로 바뀌었고, 가짜 양주 제조에 쓰인다는 오명까지 쓴 끝에 2015년 단종됐다. 그런 캪틴큐를 다시 불러낸 것은 유튜버를 비롯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었다. 1980~90년대 청춘의 술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밈(meme)으로 되살려 낸 덕분에, 11년 만에 사실상 '강제 부활'한 셈이다.
달라진 점도 분명하다. 예전 캪틴큐가 주정(酒精)에 약간의 럼 원액과 향, 색을 입힌 유사 양주(類似洋酒)였다면, 이번에는 카리브해산 럼 원액을 버번 오크통과 셰리 오크통에서 차례로 숙성한 진짜 럼이다. 옛 캪틴큐와 새 캪틴큐를 비교하는 영상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캪틴큐 말고도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술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꼭 다시 만나고 싶은 다섯 가지를 꼽아 본다.
나폴레온은 1976년 해태주조에서 나왔다. 1980년생 캪틴큐보다 4년 선배다. 원액을 20% 미만으로 넣은 기타재제주(其他再製酒), 즉 유사 양주였지만, 초기에는 프랑스 헤네시사에서 코냑 원액을 들여왔고 1980년대에는 국산 청포도를 직접 증류해 오크통에 숙성한 원액을 썼다. 1988년 광고에서도 '고급 포도원액 20% 함유'를 앞세웠다. 원액을 아예 빼 버린 캪틴큐와 달리, 나폴레온은 끝까지 원액을 조금이라도 넣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캪틴큐가 '캡틴큐'가 아니듯, 나폴레온도 '나폴레옹'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받침을 일곱 개로 제한한 지금의 외래어 표기법이 생긴 것은 1986년. 그 이전에 붙은 이름들이라 지금과 표기가 다르다. 여기에 일본식 발음의 영향을 보는 시각도 있다. 일본에서는 나폴레옹을 '나포레온'에 가깝게 읽는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50년 전에 이미 하이볼을 제안했다는 사실이다. 출시 당시 광고는 진저에일과 1대3으로 섞고 얼음을 넣어 즐기라는 레시피를 내세웠다. 지금 편의점 냉장고를 가득 채운 하이볼을 떠올리면 시대를 한참 앞선 마케팅이었다. 나폴레온은 이후 해태주조에서 국순당으로 넘어갔고, 2009년 원액 함량을 높인 '나폴레온 로얄'로 다시 나왔지만 2010년대 후반 단종됐다. 캪틴큐처럼 진짜 원액을 담아 돌아온다면 어떨까.
시작은 1976년 '죠지 드레이크'였다. 스카치 원액을 19.9% 넣은 기타재제주였는데, 원액이 20%에 못 미치는 술에 '위스키'라는 이름을 쓴 것이 문제가 되자 백화양조는 원액을 25%로 높인 '베리나인'을 내놓는다. 이어 나온 원액 30%의 고급판이 바로 베리나인 골드다. 원액이 30%를 넘으면 '특급 위스키'로 불리던 시절, 베리나인 골드는 80년대 초반 특급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1980년 8월 값이 오르면서 베리나인 골드 700㎖ 한 병은 1만5650원이 됐다. 캪틴큐가 소주의 열 배 남짓이었다면, 베리나인 골드는 예순 배에 이르렀다. 캪틴큐가 대학생들의 작은 사치였다면, 베리나인 골드는 아버지들의 성공을 증명하는 술이었다.
반전은 그다음이다. 1980년대 중반 백화양조는 원액 100%의 '베리나인 골드 킹'을 내놓았지만, OB씨그램의 '패스포트'에 밀려 고전했다. 경영이 흔들린 백화양조는 1985년 말 두산에 넘어갔고, 그 주류 사업은 2009년 다시 롯데로 넘어갔다.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 베리나인 골드는 한국 위스키의 대명사였다.
이름 때문에 도라지가 들어갔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 뿌리는 일본 산토리의 저가 위스키 '토리스(Torys)'다.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鳥井信治?)의 성에서 딴 이름이다. 1950년대 주한미군 배급품에 섞여 들어온 토리스가 인기를 끌자, 1956년 부산 토성동의 국제양조장이 이를 흉내 낸 '도리스 위스키'를 내놓았다. 1960년 왜색 상표 도용 논란으로 사장이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고, 회사는 철자가 비슷한 '도라지(Torage)'로 이름을 바꿔 다시 팔았다. 그런데 오히려 인기가 더 높아졌다.

물론 위스키 원액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다. 주정에 일본산 위스키 향료와 색소를 섞은 술이었다. 그래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광고는 '문화인(文化人)의 양주'를 내세웠고, 소매가격은 큰 병 170원, 작은 병 100원이었다. 다방에서는 차에 도라지 위스키 몇 방울을 떨어뜨린 '위티(whisky tea)'가 비싼 메뉴로 팔렸다. 원액을 넣은 위스키들이 등장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도라지 위스키는 1976년 면허를 넘기며 20년 역사를 마감했다. 최백호가 이 술을 노랫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이미 단종된 술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라지 위스키는 4050보다는 6070세대의 추억이다. 지금 그 명맥을 잇는 곳은 없다. 언젠가 옛날식 다방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한 잔 마셔 보고 싶다.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원액 19.9%짜리 술을 위스키라 부르며 파는 일이 문제가 되자 원액 기준을 20%에서 25%로, 다시 30%로 차례로 끌어올렸다. 위스키 안에도 등급이 있었다. 원액 함량에 따라 '1급'과 '특급'으로 나뉘었고, 30%를 넘어야 '특급'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다. 베리나인 골드가 라벨에 '특급 위스키'를 새긴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원액 30%라는 말은 나머지 70%가 소주의 원료인 주정(酒精)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무늬만 양주'를 마신 셈이다
캪틴큐를 두고 이토록 많은 밈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0~80년대 치열하게 살며 '잘 살아보자'는 꿈을 품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AI가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대, 생활은 편해졌지만 역설적으로 서울에 아파트 하나 얻기 힘든 시대, 복고 양주의 귀환은 어쩌면 암울한 현실 속에서 옛것의 낭만을 찾는 그리움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