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운임 급등으로 유럽과 아시아 정유시설의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석유제품 가격이 올라도 원유 운송비와 조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유업체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가동을 축소하면 경유·휘발유 공급 부족이 심해져 가격이 추가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금융정보업체 엘에스이지가 집계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정제마진은 지난 5일 배럴당 마이너스 10.95달러를 기록했다. 아시아의 지표인 싱가포르 정제마진도 지난달 10일 배럴당 마이너스 4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원유와 석유제품의 선물가격 차이인 ‘크랙 스프레드’는 최근 미국과 유럽의 경유 시장에서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됐다. 통상 정유업체의 수익성이 좋아지는 신호지만, 실제 현물 조달가격과 운송비를 반영한 정제마진은 반대로 악화하고 있다.
유럽 정유업체들은 운송비를 아끼기 위해 운송 거리가 짧은 유럽산 원유 확보에 몰렸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북해산 브렌트유는 미주나 중동산 원유보다 배럴당 운송비가 10~15달러 저렴하다.
그러나 수요가 집중되면서 브렌트유 현물가격은 이달 초 배럴당 154달러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물가격보다 50% 높은 수준이다. 운송비를 줄이려다 원유 구매 비용이 급등하는 부담을 떠안은 셈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는 운송비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선박에서 오만 앞바다에서 원유를 옮겨 싣거나,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얀부항에서 수에즈운하·희망봉을 돌아오는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지난주 보고서에서 정유시설들이 급등한 원료 비용을 감수하거나, 제품 수율이 낮은 원유로 바꾸거나, 정제 처리량을 줄여야 하는 선택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가동 축소에 나서면 이미 부족한 경유·휘발유 공급이 더 줄어들 수 있다. 원유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운송비와 정제 차질 때문에 소비자가 부담하는 석유제품 가격은 오르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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