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많은 대학 교수의 고민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학생 과제를 걸러내는 것이다. 학생의 무분별한 AI 활용을 막고,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미국 명문 디자인스쿨 뉴욕패션기술대(FIT,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의 크리스티 신(Christie Shin) 교수(사진)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AI가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디자인 시안을 쏟아내는 시대, 학생에게 AI를 '아예 못 쓰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란 게 신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학생이 디자인 과제에 AI를 잘 활용할 수 있게 윤리와 기술을 가르치는 동시에 학생의 △창의성 △이해도 △AI 조율 능력 등을 매주 대면 심사해 평가하는 것이다.
FIT에서 AI 기초, AI와 함께하는 디자인 등의 강의를 하는 신 교수는 올해 구글의 지원을 받아 'AI 시대 평가 방법론'을 연구하는 '구글 고등교육 교수 AI 펠로우십'에 선정됐다. 최근 신 교수를 뉴욕 맨해튼에 있는 FIT 연구실에서 만나 AI 시대 디자인의 본질과 교수법,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대학의 역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전처럼 완성도 높은 결과물만 보고 점수를 주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과제물은 훌륭하지만, 학생이 진짜 무엇을 배웠는지 검증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과제 과정을 보고서로 제출하게 해도 AI가 설명문까지 대신 써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올해 ‘구글 고등교육 교수 AI 펠로우십’에 선발돼 이 문제를 연구 중이라고요.
"북미 교육자 65명으로 구성된 1기 펠로로 선발돼 AI 환경에서 학생의 사고 과정과 기여도를 평가하는 8차원 루브릭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구글 캠퍼스 발표회에서 제안한 핵심은 'AI-in-the-loop' 개념입니다.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중간 실행 과정에서 필요한 AI 툴을 배치하는 구조입니다."
▷학교 현장에선 평가와 검증을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평가를 매주 진행합니다. 중간·기말 완성품만 받는 방식을 버리고, 주차 별 아이디어 발전 과정을 따라갑니다. 1주 차 브레인스토밍, 2주 차 스케치 및 변화 단계를 거치며 '왜 이 콘셉트를 선택했고 어떤 안을 버렸는지' 직접 설명하게 합니다."
▷학생의 창의적 사고와 AI가 만든 결과물을 구별하는 지표가 궁금합니다.
"저지먼트 콜(Judgment Call), 즉 판단력입니다. 대면 발표에서 '왜 이 색을 썼는지', '왜 이 레이아웃이 효과적인지' 물었을 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가 제시한 결과가 목적에 맞는지 알아채고 수정하려면 디자인 기본 지식(도메인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이 질문을 거치면 도구만 다루는 학생과 자기 작업을 완벽히 이해하는 학생이 명확히 구별됩니다. 이는 대여섯 단계를 거치는 실제 기업 채용 면접 대비 과정이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능력과 창의성입니다. 과거에는 3D 시뮬레이션, 모션, 피그마 등 툴 익히기에 학기 대부분을 썼습니다. AI 덕분에 제작 시간이 줄어든 만큼, 디자이너는 문제 정의, 브레인스토밍, 콘셉트 개발, 전략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합니다. 여러 AI 도구에 역할을 나누어 주고 결과를 평가 및 매니징하는 '디렉터'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미드저니 등 특정 AI 툴 사용법 위주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툴에만 매달리는 교육은 생명력이 짧습니다. 디자이너의 도구는 레터프레스, 포토샵, 스케치, XD, 피그마를 거쳐 AI로 끊임없이 변해왔고 또 사라집니다. 기본기를 알면 새로운 툴을 습득하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FIT의 AI와 함께 하는 디자인 수업에서도 툴 기술이 아니라 AI 윤리, 개념적 전략, 프롬프팅 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남기는 '지적 지문'을 가르칩니다. 또한 플로라(Flora), 일레븐랩스(ElevenLabs) 같은 AI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수업에 초청해 실습을 진행합니다."
▷AI를 주도적으로 잘 활용하는 사례와 오용하는 학생으로 구분이 되겠네요.
"모션 제작 능력이 약했던 한 학생은 AI로 부족한 실행 스킬을 보완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창의적 작품을 완성하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반면, AI가 작성한 에세이나 경쟁사 분석 리서치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제출하는 것은 배움의 기회를 버리는 잘못된 오용 사례입니다."
"교수로서 저도 굉장히 우려하는 대목입니다. 하이브리드·원격 근무로 보고 배울 기회가 줄어든 데다 AI가 인턴·주니어 수준의 업무를 신속히 소화하면서 신입 채용 진입 문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기업은 어떤 자질을 갖춘 신입사원을 원하나요.
"기업이 포트폴리오에서 보는 것은 단순 숙련도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기꺼이 시도하고 자기 작업에 적용해 보는 주도적 태도'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AI 그래픽 디자이너', 'UX 디자이너 with AI', '창조적 테크놀로지스트(Creative Technologist)'처럼 AI 활용 역량을 요구하는 채용 포지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역할도 바뀔 것 같습니다.
"제 교육 목표는 '학생들이 졸업하기도 전에 현장 오퍼(Job Offer)를 받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수업에 기업 관계자를 초청하고 해커톤 심사위원으로 모셔서 실제 정규직 채용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렌즈 오브 피그마' 등 커뮤니티를 통해 파슨스 등 타 학교 학생들에게도 포트폴리오 리뷰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빅테크 한인 모임처럼 단순 친목을 넘어 서로의 커리어에 실질적인 레버리지가 되는 단결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학계의 AI 활용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책도 쓰셨다고요.
"'AI와 함께하는 디자인'(Empowering Design Education with AI)이라는 책을 씨제이 예 교수와 공동으로 집필, 출간했습니다. 현장(기업)과 대학들이 AI라는 도구의 유행만 따라가며 본질을 놓치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껴서요. 디자인의 기본으로 돌아가 AI를 활용하면 이 시기를 큰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체계적으로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어 번역본도 부산에 있는 출판사 산지니에서 출간하기로 하고, 최근 출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국어판 제목은 'AI와 함께하는 디자인 교육' 입니다."
▷미국 진출을 꿈꾸는 한국 청년 디자이너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입니까.
"한국 학생들은 정말 스마트하고 꼼꼼하며 생각의 깊이가 깊습니다. 다만 영어에 대한 부담 때문에 주눅 드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번역기나 AI 도구가 잘 되어 있는 만큼, 언어 장벽 때문에 자신의 뛰어난 강점까지 감추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도전하길 바랍니다."
뉴욕=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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