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해녀 삼춘’들이 있었다. 삼춘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구수한 제주어와 삶의 지혜는 낯선 섬 생활의 길잡이가 되었고, 물질을 함께하고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해녀 공동체의 문화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단순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직업인인 줄로만 알았던 해녀는, 기후와 수온의 변화를 매일 몸으로 체감하고 기록하는 살아있는 바다의 증인이기도 했다.

“물질을 갓 배우고 처음 바다로 나간 날이었습니다. 초보다 보니 제대로 잡은 것도 없
는데, 물질을 끝내고 뭍으로 올라올 때 빈 테왁을 메고 나오면 기가 죽고 부끄러울까 봐
삼춘들이 바닷속에서 조용히 다가왔어요. 열세 분의 삼춘들이 ‘절대 내가 줬다고 말하
지 말라’며 각자 잡은 소라를 제 망사리에 몰래 채워주셨죠. 뭍에 올라와 보니 제 망사리
가 소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해녀 사회에는 물질이 서툰 신입이나 건강이 좋지 않은 노약자를 위해 자신의 수확물을
소리 없이 나눠주는 ‘게석 문화’가 전해 내려온다. 삼춘들은 이날 채워준 첫 소라를 시장
에 파는 대신, 친구들과 둘러앉아 나눠 먹으며 해녀가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
도록 도왔다. 낯선 타향에서 물질을 시작한 그에게 든든한 엄마가 열세 명이나 생긴 것이다.
혼자서는 들어갈 수 없는 거친 바다에서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고, 부족한 수확은 묵묵히
채워주는 삼춘들의 나눔. 조은별 해녀는 이 경이로운 공동체의 삶과 바다의 숨결을 혼자
만의 기억으로 묻어두지 않고 글과 시로 엮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언어들을 차곡차곡 모아 펴낸 책이 바로 시집 ‘물벗, 인생의 벗이 될 때’다.

특히 조은별 해녀가 가장 아끼는 시에는 거센 파도를 견디며 만난 삼춘들과 동료들
을 향한 애틋한 고백이 담겨 있다.
<물벗, 인생의 벗이 될 때>
낯설고 바람 거센 타향살이
바다의 품에서
나는 너를 만났다
제주 바다의 숨결을 배우며
숨비소리 따라
서로의 깊이를 들여다보았다
물결처럼 스며드는 취향,
바다보다 깊고
소금보다 진한 정이 잔잔히 맺혀간다
이 섬이 더 이상 홀로 아닌건
같은 바다를 향해
숨을 고르는
인생의 벗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숨을 참고 깊은 바다로 내려가지만, 물 위로 올라와 내뱉는 숨비소리로 서로의
위치와 안녕을 확인하는 해녀들. 시는 낯선 타향에서 물질을 함께하는 ‘물벗’이 어느덧 삶을 지탱해 주는 ‘인생의 벗’이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조은별 해녀는 물질을 이어가는 한편, 해녀들이 지켜온 가치와 공동체 문화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해녀가 된다는 것은 바다의 품을 배우는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주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해녀들의 삶과 공동체 문화를 시로 쓰고, 사람
들에게 이야기하며 알리고 교육하는 것까지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없이 다가와 소라를 건네던 열세 분 삼춘들의 손길처럼, 그의 시집 ‘물벗, 인생의 벗이 될 때’는 서로의 빈 테왁을 채워주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소중한 온기를 전하고 있다.
제주=유지인, 이호연, 윤서현, 이현준 인턴 기자 / 배경민 한경닷컴 기자 bk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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