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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향수 안 부럽네"…서촌 홀린 '한국 브랜드 향' [현장+]

입력 2026-10-21 14:16  

값이 비싸고 품질이 좋은 향수라고 하면 통상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유럽 브랜드 제품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오랜 조향 전통과 럭셔리 하우스를 앞세운 유럽이 오랜 시간 향수 시장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국내 향수 시장에는 또 다른 흐름이 생겼다. 희소성과 개성을 앞세운 한국식 향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울에서도 특히 한국적인 매력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꼽히는 서촌에도 국내 향수를 즐길 만한 공간이 여럿 존재한다. 그랑핸드, 모노룸, 르플랑에떼 등 다양한 국내 향 브랜드가 서촌에 자리를 잡았다. 이중 국내 향 제품 중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표방하는 솔리튜드 매장을 지난 20일 방문했다.

골목 안 고즈넉한 가정집인가 했더니 입구에 들어서면 화강암과 목재로 만든 중앙 진열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전통가옥의 기단과 목구조에서 착안한 형태다. 진열장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옮기면 천장을 가로지르는 흰색 원단이 이어진다. 한옥의 서까래가 반복되는 모습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장치다.


매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고재와 삼나무, 자개 등 한국 전통 건축과 공예에서 익숙한 소재가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다. 자개를 활용한 선반은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표면의 색과 질감이 달라 보인다. 흰색과 옅은 회색을 중심으로 구성한 공간은 장식을 덜어낸 대신 재료와 빛, 향 자체에 시선이 머물도록 했다.

솔리튜드는 이 서촌 매장을 통해 향으로 표현해온 ‘온전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철학을 건축과 공간으로 확장했다. 브랜드는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향으로 표현하는 것이 브랜드의 지향점이다. 프랑스 조향사들과 협업한 오드퍼퓸을 중심으로 바디·핸드케어, 홈 프래그런스까지 제품군을 넓혔다.

솔리튜드는 서촌 매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건물 안에 다시 하나의 집을 짓는다’는 개념으로 설계했다. 전국에서 공수한 한국 고유의 암석과 오래된 목재, 자개 등을 사용하고 한국 공예 작가들과 협업해 돌과 나무의 질감을 살렸다. 오래된 골목과 낮은 지붕이 남아 있는 서촌의 분위기 위에 현대적인 미감을 덧입힌 셈이다.


시간을 두고 향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매장 한쪽에는 작은 브루잉 바를 마련했다. 전문 바리스타가 국내외 로스터리에서 고른 원두로 스페셜티 필터 커피를 내준다. 향수를 맡고 제품을 고르는 데서 끝나는 대신 커피를 마시며 공간에 머물도록 한 것이다. 솔리튜드 관계자는 “향료를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커피 원두도 엄격한 기준으로 큐레이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에서 커피로, 다시 공간으로 감각 경험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솔리튜드는 21일 첫 디퓨저 ‘블랙 카시스(BLACK CASSIS)’를 출시했다. 패션 플랫폼 크림과 두 번째로 협업해 만든 제품으로, 지난해 12월 오드퍼퓸 ‘로즈 크롬(ROSE CHROME)’을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는 크림 도산 플래그십의 공간을 위한 향을 개발했다.


블랙 카시스는 이름 그대로 프랑스어로 블랙커런트를 뜻하는 카시스를 중심으로 한 향이다. 달콤한 베리 향보다는 카시스 특유의 산미와 푸른 잎을 연상시키는 그린한 뉘앙스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베르가못과 카다멈, 베티버, 시더우드를 더했다. 크림 도산 플래그십의 투명한 유리와 높은 천장,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복층 구조에서 받은 인상을 향으로 옮겼다는 설명이다.

조향은 글로벌 향료사 MANE의 크리에이티브 퍼퓨머 개리 왕(Gary Wang)이 맡았다. 19년간 조향사로 활동해온 그는 카시스의 산미와 그린한 생동감에 베르가못과 카다멈, 베티버, 시더우드를 조합했다. 특정 상업 공간에서 출발한 향이지만 거실과 서재, 오피스 등 일상 공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솔리튜드가 디퓨저까지 제품군을 넓히는 것은 향을 몸에 뿌리는 제품에만 한정하지 않겠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오드퍼퓸에서 시작해 바디·핸드케어, 홈 프래그런스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향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넓혀가고 있다.


해외 시장에도 발을 넓힌다. 오는 11월 편집스토어 ‘나이스웨더(NICE WEATHER)’ 도쿄점을 시작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한다. 일본 자사몰도 같은 시기 문을 연다. 그동안 서울에서 제품을 구입했던 일본 고객들이 현지에서도 제품을 살 수 있도록 유통망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이여름 솔리튜드 대표는 “블랙 카시스는 특정 공간에서 시작된 향이지만 결국 각자의 일상과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머무는 향이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향을 통해 공간과 감각의 관계를 확장하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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