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문화유산 보전과 정비사업이 충돌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의 종묘 경관 훼손 논쟁에 이어 이번에는 중구 주민들이 ‘한양의 수도성곽’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움직임에 반대하고 나섰다. 세계유산 보존의 필요성뿐 아니라 주민 재산권 보호, 진행 중인 정비사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 중구는 한양의 수도성곽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리는데 반대한다는 내용의 주민 의견서를 지난 13일 서울시에, 지난 20일에 국가유산청·유네스코·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전달했다고 21일 밝혔다. 의견서에는 주민 3500여 명의 서명과 함께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정비사업 지연과 재산권 제한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가 담겼다. 이 의견서는 지난달 3일 중구가 개최한 ‘찾아가는 주민설명회’에서 주민들이 제출했다.
앞서 지난 1월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등 관계기관은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을 아우르는 ‘한양의 수도성곽’의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내년 7월 튀르키예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이 가운데 한양도성은 중구의 광희문에서 다산동과 남산을 거쳐 숭례문으로 이어진다. 재개발을 추진 중인 신당9·10·13구역, 리모델링 계획 중인 남산타운, 광희동·DDP·서소문 일대 도심 재개발사업 대상지가 한양도성과 인접한다.
이들 구역의 주민들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세계유산영향평가(HIA)’로 인해 정비사업이 멈추어 설 거라 우려하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100m 이내 구역이 완충구역으로 지정돼 건축·정비사업 등 추진 시 HIA가 의무화된다. 평가 절차에만 평균 1년~3년가량이 추가로 소요돼 정비사업 일정 지연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앞서 세계유산에 등재된 공주 공산성의 경우 주변 정비 사업계획이 대폭 조정을 요청받으며 사업이 약 3년간 지연됐다. 완충구역 밖이더라도 국가유산청에서 HIA 실시를 요청할 수 있다.
정비사업뿐만이 아니다. 다산동, 장충동, 신당동 등 한양도성에 접한 인근 일반 건축물의 신·증·개축 등도 새로운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성벽이 남아 있지 않은 유실 구간도 지하 유구의 보존이나 연속유산의 경계 설정 등에 따라 검토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은 규제의 예측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구는 다음달 5일 신당누리센터 대강당에서 2차 주민설명회를 열어 의견서 전달 이후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추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주민 우려가 커지자 서울시도 뒤늦게 의견수렴에 나섰다. 서울시는 13일부터 60일간 주민·전문가 의견 청취에 이어 내달 수도성곽이 지나는 7개 자치구(종로구, 중구, 용산구, 성북구, 강북구, 서대문구, 은평구) 주민을 대상으로 두 차례 설명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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