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헷갈린다. 헤드셋을 쓰고 낯선 세계에 들어서면 가상의 풍경 속에 실제 배우가 나타난다.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이 뒤섞이는 순간, 관객은 어느새 작품 속 주인공이 된다.
전남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23일 개막하는 'ACT(Arts&Creative Technology) 페스티벌 2026'의 백미는 이처럼 직접 경험하는 예술이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축제에는 10개국 29개 팀이 참여해 11월 8일까지 예술과 첨단기술의 만남을 선보인다.
축제 주제는 '아이, 휴먼: 테크네세(世)에 응답하기'다. 기술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크레이그 킨테로와 피비 그린버그가 공동 연출한 '블러(BLUR)'다.
2025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이머시브 부문 초청작으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에 실제 배우의 연기를 결합한 확장현실(XR) 극장이다.
관객 10명이 헤드셋을 착용하고 약 35분 동안 가상의 공간을 탐험한다.
아들을 잃은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실제 배우의 손길과 가상의 장면이 교차한다. 생명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기묘한 경험이다.
앞서 미국 전시 당시 1인당 40달러를 받는 유료 전시였지만 ACC에서 사전예약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말 많은 AI 로봇도 기다린다. 노진아의 신작 '네르바 아티피시아'는 친구처럼 능숙하게 대화하지만 때로는 사실이 아닌 말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다.
맞은편에는 1996년 제작된 백남준의 '로봇 K-456'이 있다. 비틀거리는 옛 로봇과 유창하게 말하는 오늘날의 AI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독일 작가 안네 임호프의 영상 '아바타'도 국내에서 처음 공개한다.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작가인 임호프는 32분간 이어지는 영상에서 흐릿해지는 배경과 또렷하게 남은 인간의 몸을 대비했다.
우톈창의 '안녕, 춘추각'은 AI 영상처럼 보이지만 오래된 극장 마술과 손기술로 관객의 눈을 속인다.
김상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야외로 문을 연 빅도어 시어터에서 소리와 빛의 공연을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될 것"이라며 "기술이 우리 삶의 환경이 된 지금 순간순간 어긋남을 드러내는 기술 앞에서 잠시 멈춰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남광주=임동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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