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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쓴 머리는 편히 잠들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 나오는 대사다. 우리에게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하다. 명예와 권력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희생이 따른다는 뜻이다.
가업승계도 다르지 않다. 세상은 후계자가 물려받은 왕관을 먼저 본다. 그러나 그 무게를 견디며 기업을 키워 온 시간과 노력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경영을 책임지며 기업가치를 높인 후계자가 창업주로부터 받은 주식을 다른 자녀가 받은 재산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평한가. 승계 과정에서 이전된 주식에 후계자의 기여를 보상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가업승계의 핵심 법적 쟁점이 된다.
문제는 승계가 주식을 이전하고 세금을 신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창업주가 사망하면 다른 자녀들이 후계자가 받은 주식이나 그 밖의 재산을 두고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고, 후계자가 받은 주식도 유류분 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승계가 마무리됐다고 여긴 바로 그 시점에 분쟁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계 분쟁을 예방하면서도 기업을 키운 후계자의 기여를 정당하게 보상할 방법은 없을까. 2026년 3월 17일 시행된 개정 민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개정 민법이 바꾼 유류분의 기준

종전에는 유류분 반환을 인정할 때 증여나 유증을 받은 재산 자체를 돌려주는 원물반환이 원칙이었다. 따라서 후계자가 받은 주식이 반환 대상이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일부를 다른 상속인에게 이전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분과 의결권이 분산되고, 창업주가 설계한 지배구조가 달라지거나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개정 민법은 이 구조를 바꿨다. 2026년 3월 17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 유류분 권리자는 원칙적으로 유류분 부족액에 해당하는 가액의 지급을 청구하게 된다. 반환 방식이 금전 지급으로 바뀌면서 후계자는 부족액을 금전으로 정산하고 지분 분산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더 주목할 변화는 기여한 상속인이 받은 증여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을 유지·증가시키는 데 특별히 기여한 데 대한 보상으로 이뤄진 증여나 유증은, 그 기여에 상응하는 범위에서 특별수익으로 제외될 수 있다. 이 기준은 유류분 산정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공동상속인이 될 후계자가 받은 주식도 특별한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인정되는 범위에서는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특별수익에서 제외될 수 있다. 금전 지급 원칙이 지분 분산을 줄이는 장치라면, 보상적 증여에 관한 규정은 후계자가 부담할 금액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대법원도 2022년 3월 17일 선고한 판결에서, 특별한 부양이나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이뤄진 증여는 특별수익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때 수증자의 실제 기여와 증여자의 보상 의사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수증자의 실제 기여와 증여자의 보상 의사를 함께 살핀다는 이 기준은 가업승계를 설계할 때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승계 방식에 따른 고민
먼저 신탁이다. 주식을 신탁하고 후계자에게 수익권을 부여하거나 위탁자 사후에 주식이 귀속되도록 설계하더라도, 신탁이라는 형식 만으로 유류분 문제에서 당연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탁재산 자체와 수익권은 법적 성격이 다르고, 후계자가 취득하는 권리의 내용과 경제적 이익도 계약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신탁을 활용한 승계에선 후계자가 어떤 권리를 언제 취득하는지, 그 권리의 경제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 이전을 특별한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다음은 저가양도다. 창업주가 후계자에게 주식을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양도하면 다른 공동상속인은 시가와 실제 매매대금의 차액을 실질적인 증여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매매 형식을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유류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주식가치와 실제 대금 지급 여부를 토대로 후계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의 존재와 범위를 확인하고, 그 이익 가운데 특별한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계약서에 담을 기여와 보상의 내용

후계자의 기여를 보상의 근거로 삼으려면 단순히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일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영위기 때의 자금 투입, 핵심 기술이나 거래처의 확보, 신규 사업 개척 등 구체적인 기여와 그것이 기업가치의 유지·증가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인 자료로 남겨야 한다. 이미 받은 급여나 성과급과 별도로 보상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되는 주식이나 경제적 이익의 가치도 그 기여와 합리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결국 계약서의 문구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실제 기여, 창업주의 보상 의사, 기여와 보상 사이의 합리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함께 있어야 한다. 분쟁이 생긴 뒤 이를 설명하려 하기보다, 승계 당시 계약서나 의사록 등에 보상의 취지와 범위를 구체적으로 남겨 두는 것이 중요하다.
유류분 제도는 가족에게 최소한의 상속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고, 그 취지는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기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왕관의 무게를 견뎌 온 후계자의 노력도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개정 민법은 후계자의 기여를 정당하게 평가하면서 주식과 의결권의 분산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법이 바뀌었다고 안정적인 승계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후계자의 구체적인 기여와 창업주의 보상 의사를 계약과 객관적인 자료로 남기는 장치 등이 필요하다.
이제 가업승계는 얼마의 주식을 넘길 것인지를 넘어, 왜 넘기는지, 무엇에 대한 보상인지, 이후 경영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왕관을 물려주는 일만큼이나 그 무게를 견뎌 온 시간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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