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3700억원을 투입해 충남 아산에 국가 연구개발(R&D) 거점을 세운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한국이 주도해 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마저 위협받자 정부가 기술 초격차를 다시 벌리기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의 기초 연구가 기업의 실제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연구개발 단절’을 해소하고, 중소·중견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기술 사업화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산업통상부는 ‘첨단 디스플레이 국가연구플랫폼 구축사업’이 총사업비 3688억7000만원 규모로 예비타당성조사를 최종 통과했다고 6일 밝혔다. 사업 기간은 2027년부터 2033년까지 7년이며, 국비 2789억원이 투입된다. 디스플레이 분야 단독 예타 사업 가운데 역대 최고 수준인 71%의 사업비 반영률을 기록했다. 산업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OLED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로봇·웨어러블·XR 등 새로운 수요 산업으로 디스플레이의 활용 영역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충남 아산에 들어설 ‘첨단디스플레이연구원’이다. 패널 설계부터 시제품 제작, 성능 검증까지 한곳에서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개방형 연구개발 플랫폼으로 조성된다. 지금까지 대학과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이 기업의 양산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장비와 시설, 검증 역량 부족으로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대기업뿐 아니라 자체 연구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도 연구원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
연구원은 기존 디스플레이 연구시설과도 연계한다. 천안 디스플레이 혁신공정센터는 OLED 소재·부품과 개별 제조 공정을 실증하고, 아산 스마트모듈러센터는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중심으로 실증을 맡는다. 여기에 한국전자기술연구원과 한국광기술원, 한국자동차연구원 등 전문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s)’ 방식으로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한다. 중심 연구원인 허브가 각 분야 전문기관인 스포크를 연결해 연구 역량과 장비를 공유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통상 6개월이 걸리던 시제품 검증 기간을 1개월로 줄인다는 목표다.
정부는 연구개발 사업을 20개 핵심 기술 과제로 나눠 추진한다. 기존 OLED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오버 OLED(Over OLED)’, 디스플레이를 다른 산업과 결합하는 ‘크로스 OLED(Cross OLED)’, OLED 이후 시장을 겨냥한 ‘포스트 OLED(Post OLED)’ 등 3개 분야다.
오버 OLED 분야에서는 화면의 색 표현 범위를 넓히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한다. 자연색에 가까운 색을 구현하는 국제 색 영역 표준인 ‘REC.2020’을 100% 구현하면서 전력 소모를 낮추는 초고화질·초저전력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확장현실(XR) 기기에 들어가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도 개발한다. 기존 XR용 패널은 높은 해상도를 구현하는 데 제조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유리기판을 활용해 비용을 낮추는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크로스 OLED 분야에서는 디스플레이를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는 화면에서 정보를 감지하는 센서로 확장한다. 화면 어디에 손가락을 대더라도 지문이나 혈압 등 생체 신호를 읽어내는 센서 일체형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자유롭게 늘어나고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 기술도 개발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피부나 스마트 의류처럼 평평하지 않은 표면에 붙이거나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제품에 활용할 수 있다.
포스트 OLED 분야에서는 OLED 다음 세대의 디스플레이 기술로 꼽히는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상용화에 도전한다. 마이크로LED 등 나노 크기의 발광소자를 기판에 옮겨 붙이는 기존 전사 공정은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잉크젯 방식으로 나노LED를 기판에 뿌린 뒤 전기장을 이용해 원하는 위치에 정렬하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전사 공정의 복잡성과 비용을 낮춰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생산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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