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싶네요. 현재 삼성전자는 과거 '5만전자'라고 조롱받을 때와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지난 6일 국내 증시가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 우려에 양대 시장이 폭락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제 '5만전자'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삼성전자는 장중 낙폭을 키워 17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관련 없는 과도한 공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지수는 개장 3분 만에 8% 넘게 폭락하면서 곧바로 서킷브레이커(20분간 매매 중단)가 발동됐다. 서킷브레이커는 코스피지수가 직전일 대비 8% 이상 떨어진 상태가 1분간 이어지면 주식과 관련 선물·옵션 거래를 20분간 멈추는 제도다. 유가증권시장에선 역대 17번째이며, 올해만 11번째다.
거래재개 후엔 기관의 프로그램 매도 주문을 5분간 멈추는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됐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양원) 다수당을 차지하는 '블루 웨이브'가 현실화하면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멈춰 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시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알래스카·조지아·캔자스·메인·미시간·뉴햄프셔·뉴멕시코·뉴욕·오하이오·오리건·텍사스·위스콘신 등 12개주에서는 데이터센터 개발의 일시 중단(모라토리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클린뷰에 따르면 미국에서 계획 중인 데이터센터 용량의 41%는 신임 주지사가 건설 일시 중단을 지지하는 주에 있다.
일례로 미국 최대 데이터센터 집적지 중 한 곳인 텍사스의 주지사로 당선된 민주당 소속 지나 히노호사 후보는 모든 신규 데이터센터 승인을 즉시 유예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히노호사 당선인은 전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텍사스 주민들을 (데이터센터로 인한 피해에서) 보호할 법안을 만들 것이고, 그러한 보호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데이터센터 관련 업무들은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데이터센터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들이 텍사스에서 단물만 취하는 것을 혐오하며, 내가 주지사가 되면 그런 일은 중단될 것"이라고 공약을 재확인했다.
다만 증권가에선 이번 데이터센터 규제 이슈를 건설 중단이 아닌 속도 조절 차원으로 해석했다. 주지사들의 데이터센터 규제 공약은 새롭게 건설되는 시설에 일부 적용되거나 착공이 늦어질 순 있지만 기존 프로젝트의 취소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미국 주요 20개 주에서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데이터센터 용량 33.8기가와트(GW) 가운데 약 75%는 이미 건설 중이다. 반면 2028년 미국 전체 신규 공급 예상치 62.2GW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아직 착공하지 않았다.
권영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미 연방 차원의 기술 규제와 감사, 인허가 재검토는 선거 전부터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제한적"이라며 "영향 가능한 최대 13GW는 2035년까지 예상 증가 용량 150GW의 8%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도 "데이터센터 건설은 국가 성장 동력이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의 성장 동력이기도 하다"며 "데이터센터 건설을 지연시키기보다는 개발 기업에 제공하던 세제 혜택을 축소하거나 비용 부담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는 AI 인프라 수요에 일부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는 있으나 AI 중심의 성장 동력의 방향을 바꿀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번 데이터센터 규제 배경이 지역 전력망, 용수 공급 등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만큼 기업들도 설계 변경 등으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구글은 전날 미국 와이오밍주에 170억달러(약 24조원)를 투입해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 비용 전액을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데이터센터는 블룸 에너지의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702메가와트(MW) 규모의 천연가스 연료전지 설비에서 전력 일부를 공급받으며 냉각용수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공랭식을 채택한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연료전지는 주문에만 몇 년 걸리는 천연가스 터빈과 달리 석 달이면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자가발전을 통해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엔비디아도 소규모 랙(서버 선반) 단위 전력 공급을 추진 중이다.
오픈AI도 전날 발표한 '전국 지역사회 협약'(National Community Compact) 계획에서 향후 오픈AI가 사용하는 전력 비용과 해당 전력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전력망 개선 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 건설이 전력 수요 급증과 전기료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역사회의 반발에 개선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오픈AI는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가 중도 취소되더라도 지역사회가 전력망 개선 비용을 떠안지 않도록 재정적 보증도 제공하기로 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주) 주가 급락은 AI 경쟁의 본질 속에 '정치적 언어'가 낳은 과격한 반응으로 본다"며 "현재 상황은 2024년 말 삼성전자 주가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인 5만원에 도달했던 때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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