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잇따른 양적완화…'유동성 장세' 다시 오나?

입력 2012-10-02 11:40   수정 2012-10-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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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국의 잇따른 양적완화…기대하는 ‘유동성 장세’ 다시 오나?

최근 들어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위기극복과 경기부양, 환율방어 등의 목적으로 일제히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재추진하고 있다¹. 유럽중앙은행(ECB)은 위기 발생국이 발행한 국채를 매입해 유로화 가치 안정과 유럽통합 붕괴에 대한 우려를 줄여나간다는 ‘무제한 국채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도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매월 400억 달러 규모로 모기지 담보증권(MBS)을 매입한다는 ‘3차 양적완화(QE3)’를 추진키로 합의했다. 종전의 QE1, QE2와 다른 것은 규모나 시한을 정하지 않고 고용시장이 충분히 개선될 때까지 채권매입을 지속하기로 해 사실상 무제한 채권매입에 나선 셈이다.

일본 중앙은행(BOJ)도 경기부양 차원에서 엔고를 저지할 목적으로 종전의 자산매입규모를 10조엔 이상 늘리는 `일본판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인구구조의 고령화 등으로 내수가 쉽게 살아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는 엔고 약세를 지지해 수출을 회복시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속된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글로벌 유동성은 크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 정도는 미국, 유로존, 영국, 일본, 캐나다 등 이른바 `빅 5`의 통화를 합산한 규모로 파악할 수 있다. `빅 5`는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²이 클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를 보유하고 있어 이들 국가의 통화 확대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직간접 파급효과가 절대적이다.

`빅 5` 중앙은행들의 본원통화 규모는 올 7월말 현재 7조 16억 달러에 달해 2007년말에 비해 2.26배, 금액으로는 3조9,200억 달러가 늘어났다. 경상GDP 대비로는 6% 수준에서 현재는 13% 정도로 커졌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정책금리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도달해 금리인하 카드가 사라지자 잇따라 대규모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에 나선 결과다.

중앙은행에서 푼 돈이 유동성 장세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돈이 잘 돌아야 한다.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과 시중에 돈이 얼마나 많이 풀리느냐는 위기국면에서는 별개의 개념이다. 하나는 중앙은행이 모든 자금의 원천인 본원통화(high-powered money)를 공급하는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금 가운데 시중의 퇴장(hoarding)됐던 통화가 방출(dishoarding)되는 경우다.

어느 특정국가에서 중앙은행에서 풀린 돈이 얼마나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가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다. 통화유통속도란 일정기간 동안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반면 통화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³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다.



일반적인 시기에 비해 글로벌 유동성이 빠르게 늘어난 셈이지만, 본원통화 증가에 비하면 총통화가 증가 폭은 크지 않다. 본원통화 대비 총통화 규모로 나타내어지는 통화승수(M2÷본원통화)는 2008년초 10배 수준에서 현재는 5.2배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늘려도 신용창조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의 의도대로 시중 유동성이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가계와 기업의 대출 수요가 부진한 탓이 가장 크다. 디레버리징에 여념이 없는 가계는 빚을 내서까지 소비에 나서거나 자산을 살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위한 대출수요가 많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금융기관들의 대출 태도가 강화된 것도 원인이다.

양적완화 등을 통해 중앙은행은 돈을 공급하는데 정작 시중에는 돈이 제대로 돌지 않음에 따라 종전의 이론이나 인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증시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같은 현상을 놓고 `역설(paradox)`니 `수수께끼(conundrum)`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2차 대전이후 `트리플 A` 등급이 떨어지는 속에서도 국채수익률은 하락하는 `미국 국채의 역설(T-bond`s paradox)`이다. 미국은 과도한 국가채무 부담으로 재정절벽(fiscal cliff)이 대통령 선거 이후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재정절벽이 우려되면 국채수익률은 폭등해야 하나 반대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장단기금리 격차(수익률곡선, 기간스프레드)는 경기를 예측하는데 유용한 지표로 활용해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실효성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예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70년대 이후 ‘그린스펀 수수께기’ 현상처럼 장단기금리 격차가 마이너스를 보인 경우 예외없이 경기침체가 수반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장단기금리 격차가 축소되면서 거의 제로 수준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확장국면이 지속되자 일부에서는 동 지표의 경기선행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장단기 금리격차는 ‘단고장저(短高長低)’의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나 미국경기는 2009년 2분기 이후 회복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9월 이후 발표된 드라기와 버냉키 패키지에서는 중앙은행에서 아무리 돈이 공급하더라도 정작 시중에서 돈이 돌지 않음에 따라 우려되는 부작용을 감안한 흔적이 뚜렷하다. 드라기의 ‘무제한 채권매입’ 방안은 재정위기 발생국이 발행한 국채를 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사주되 풀린 돈은 물가압력을 줄이기 위해 고스란히 환수하겠다는 불태화(sterilization)와 연계시킨 `재정적자 화폐화` 방안이다.

버냉키가 들고 나온 ‘무제한 양적완화’에서 ‘무제한’이라는 것은 1차, 2차 양적완화 정책과 달리 규모와 기한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드라기 패키지와 달리 풀린 돈은 회수하지 않겠다고 해 증시에서 반기고 있으나 버냉키 패키지의 행간을 읽어보면 ‘무제한’이란 용어만큼 돈을 풀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결국은 선진국들이 양적완화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제대로 돌고 있지 않은데다, 9월 이후 실시된 양적완화 정책에서는 중앙은행에서 풀리는 유동성 규모조차 줄이기 위한 노력이 뚜렷하다. 최근 증시에서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올라간다는 ‘유동성 장세(liquidity market)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한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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