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대 인생특강,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8회. 인생의 목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직장은 사람들이 목적을 찾는 가장 주된 장소 중 하나다. 목적은 삶의 다른 모든 영역에서 그러했듯이 직장에서도 에너지, 회복력, 장기적 성취를 가져다준다.
중년 미국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심리학자 앤 콜비는 화이트, 블루, 핑크 칼라 등 모든 영역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에서 목적을 찾고 있으며, 직업을 사회에 공헌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도구로 본다는 것을 발견했다. 버스 운전기사, 간호사, 점원, 웨이트리스들은 힘들고 단조로운 일, 직장 내의 정치적인 풍조, 열악한 사내 환경 등에 불평불만을 드러내는 가운데서도 놀랍게도 법조계나 의료계와 같은 전문직 엘리트들처럼 자신의 직업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미국 전체를 대표할 만한 표본을 대상으로 수행한 이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참여자(79%)가 자신의 직업이 의미 있다고 답했다.
반면 어느 영역에서나 자신의 직업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무거운 짐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전체 표본에서 20% 미만의 소수였다.
자신의 직업 세계에서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극단적인 신체적 피로를 슬기롭게 예방하고, 자신의 일에 꾸준히 헌신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연구에서 여러 노동자들이 증언한 목적의 근원들 가운데는 ‘자신의 역할 수행하기’, ‘사회에 공헌하기’, ‘타인을 돕기’, ‘가족 부양하기’, ‘동료들을 돕기’, ‘조직을 변화시키기’, ‘내 직업윤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자기표현’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연구에 참여한 40퍼센트 이상의 노동자들이 보고한 만족감 중 한 가지는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목적의식이 뚜렷한 직업은 ‘소명’으로 여겨져 왔다. 소명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거창하게 들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성인들은 실제로 자신의 직업을 소명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부정적인 연구 결과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주변으로부터 조언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개 젊은이들에게 현실 감각을 키워주는 데 주력하는 기성세대들은 소명은 낭만적인 이상에 불과하니 생계를 위한 안정적인 직업을 찾도록 조언하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소한 언어학적으로 볼 때 ‘직업(vocation)’이라는 단어 자체는 ‘소명’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직업’은 원래 ‘부름을 받은’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단어인 ‘vocatio’ 에서 비롯되었다.
소명으로서의 직업에 대한 신념은 원래 고대의 종교적 교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종교적 기원을 가진 많은 가치 개념들처럼 소명은 세속적인 방향에서도 현대 사회학자들이 흥미롭게 여기는 개념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소명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고유한 능력이 있고, 그 능력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직업을 단순히 일이 아닌 소명으로 생각한다면 직업 세계에서의 경험은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가장 일상적인 성취는 자부심의 근원이 된다. 힘들고 귀찮게 여겨졌던 허드렛일은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좌절감도 사라진다.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효과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기업과 공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든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발견되었다. 이런 효과는 막 직업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들, 자기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 효과는 전염성이 있어 소명의식이 있는 노동자는 각자의 직업에서 깊은 의미를 찾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목적은 ‘영웅적’이지 않아도 고귀할 수 있다. 고귀한 목적은 삶을 위태롭게 하는 모험이나 용기를 필요로 하진 않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영웅적인 무언가를 의미할는지 모른다. 역사책은 시대를 구한 용기 있고 드라마틱한 영웅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고귀한 목적은 매일 매일의 평범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공동체의 진보를 위해 일하는 후보자의 선거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 이 모두가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시간과 배려, 노력이나 재산을 자선단체, 친구, 가족, 공동체, 믿음, 직업에 바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윌리엄 데이먼 스탠포드대 윤리교육학 교수>
우리 사회에서 직장은 사람들이 목적을 찾는 가장 주된 장소 중 하나다. 목적은 삶의 다른 모든 영역에서 그러했듯이 직장에서도 에너지, 회복력, 장기적 성취를 가져다준다.
중년 미국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심리학자 앤 콜비는 화이트, 블루, 핑크 칼라 등 모든 영역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에서 목적을 찾고 있으며, 직업을 사회에 공헌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도구로 본다는 것을 발견했다. 버스 운전기사, 간호사, 점원, 웨이트리스들은 힘들고 단조로운 일, 직장 내의 정치적인 풍조, 열악한 사내 환경 등에 불평불만을 드러내는 가운데서도 놀랍게도 법조계나 의료계와 같은 전문직 엘리트들처럼 자신의 직업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미국 전체를 대표할 만한 표본을 대상으로 수행한 이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참여자(79%)가 자신의 직업이 의미 있다고 답했다.
반면 어느 영역에서나 자신의 직업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무거운 짐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전체 표본에서 20% 미만의 소수였다.
자신의 직업 세계에서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극단적인 신체적 피로를 슬기롭게 예방하고, 자신의 일에 꾸준히 헌신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연구에서 여러 노동자들이 증언한 목적의 근원들 가운데는 ‘자신의 역할 수행하기’, ‘사회에 공헌하기’, ‘타인을 돕기’, ‘가족 부양하기’, ‘동료들을 돕기’, ‘조직을 변화시키기’, ‘내 직업윤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자기표현’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연구에 참여한 40퍼센트 이상의 노동자들이 보고한 만족감 중 한 가지는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목적의식이 뚜렷한 직업은 ‘소명’으로 여겨져 왔다. 소명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거창하게 들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성인들은 실제로 자신의 직업을 소명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부정적인 연구 결과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주변으로부터 조언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개 젊은이들에게 현실 감각을 키워주는 데 주력하는 기성세대들은 소명은 낭만적인 이상에 불과하니 생계를 위한 안정적인 직업을 찾도록 조언하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소한 언어학적으로 볼 때 ‘직업(vocation)’이라는 단어 자체는 ‘소명’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직업’은 원래 ‘부름을 받은’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단어인 ‘vocatio’ 에서 비롯되었다.
소명으로서의 직업에 대한 신념은 원래 고대의 종교적 교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종교적 기원을 가진 많은 가치 개념들처럼 소명은 세속적인 방향에서도 현대 사회학자들이 흥미롭게 여기는 개념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소명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고유한 능력이 있고, 그 능력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직업을 단순히 일이 아닌 소명으로 생각한다면 직업 세계에서의 경험은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가장 일상적인 성취는 자부심의 근원이 된다. 힘들고 귀찮게 여겨졌던 허드렛일은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좌절감도 사라진다.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효과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기업과 공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든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발견되었다. 이런 효과는 막 직업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들, 자기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 효과는 전염성이 있어 소명의식이 있는 노동자는 각자의 직업에서 깊은 의미를 찾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목적은 ‘영웅적’이지 않아도 고귀할 수 있다. 고귀한 목적은 삶을 위태롭게 하는 모험이나 용기를 필요로 하진 않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영웅적인 무언가를 의미할는지 모른다. 역사책은 시대를 구한 용기 있고 드라마틱한 영웅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고귀한 목적은 매일 매일의 평범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공동체의 진보를 위해 일하는 후보자의 선거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 이 모두가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시간과 배려, 노력이나 재산을 자선단체, 친구, 가족, 공동체, 믿음, 직업에 바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윌리엄 데이먼 스탠포드대 윤리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