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입력 2012-12-21 11:51   수정 2012-12-2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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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7편.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신학기 전에 교사들 마음 다지기

신화적 교사상

예비교사들은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 교사론이라는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들어야 한다. 이 과목에서 말하는 교사상은은 완벽한 인간상 그 자체이다. 온전한 인격체로서 전문적 지식을 기반으로 언제나 온화하며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난 생각했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교사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그 수많은 책들이 왜 그렇게 교사로서의 휴머니즘을 강조하면서 기술도 훌륭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 것만 같다. 그건 교사들의 일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개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투, 행동, 정서적인 것들을 읽어가면서 조금씩 닮아가다 급기야는 놀이 안에서 교사놀이를 할 정도에 이른다. 친구들에게 교사처럼 책을 들어서 읽어주겠다고 하고, 엄마를 맡은 아이는 교사처럼 친구를 달래기도 혼내기도 한다. 이렇듯 교사가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교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교사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사 역시 사람인지라 함께 교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정말 예쁘게 웃는 아이, 유독 친구와 자주 싸우는 아이,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아 알쏭달쏭한 아이… 이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교사들은 책으로는 알 수 없는 대처방식들을 선택해서 사용한다. 그 선택들은 하나 둘 모이고 쌓이면서 교사로서 자신만의 노하우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영향이라는 것은 어린이와 교사가 서로 주고받는 쌍방의 것이지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주기만 하는 일방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이들도 성인 못지 않는 감수성과 생각의 깊이를 갖고 있다고 믿는 교사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생각이 자리 잡도록 도와준 어린이는 성진이라고 하는 눈빛이 깊은 아이였다.

잊지 못할 아이

내가 성진이를 처음 만난 건 하늘유치원에서 담임교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였다. 한국 나이로 여섯 살, 큰 키 효과로 다른 아이들보다 잘할 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지만 눈빛 만큼은 뭔가 두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작년 담임을 맡았던 나이가 많은 선생님은 아이의 누나도 여길 다녔으며 남매 모두 밝은 성격은 아니라고 전해 주었다. 작년 담임이었던 교사의 말처럼 상진이는 교사에게 좀 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놀이 시간이 되면 친한 단짝들을 중심으로 조용하지만 매우 활동적인 아이였지만 말이다. 그걸 보면, 단순히 밝은 성격이 아니라기 보다는 나와 내 파트너 교사에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교사를 화나게 하면 교사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다 같이 모여 이야기 하는 시간에 교사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지 상진이는 열심히 관찰하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듯 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상진이와 나는 서로 장난 섞인 이야기를 주고 받는 친근한 사이가 되어갔다. 그러다 반년이 지나고 생일이 다가올 때쯤 상진이는 처음으로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꺼내 놓았다. 아빠는 전화로는 꼭 올 것처럼 그러는데 선물만 보내고 집에 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약간 야속한듯 하면서도 별일 아닌듯 한 말투이다.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너무 갑자기 평소 절대 말하지 않았던 아빠라는 사적인 부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꺼냈기 때문이다. 난 잠시 주춤하다…선물은 뭐였냐고 물었다. 운동화라고 대답한다. 나는 평소 상진이가 잘하는 표정을 따라하며 조심스레 호응해 본다. 아이는 진지해지면서 말이 사라진다. 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물었다.



때때로 상진이는 이런 진지함과 예전에 보이던 그런 깊은 눈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 아이가 예전의 그 아이가 맞나 할 정도로 개구쟁이고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다시 한 번 일곱 살 상진이의 담임을 맡으면서 약간 걱정으로 변하였다. 이건 심해도 좀 너무 심한 거 아닐까? 학교 가서 괜찮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그렇게 가을학기가 되었고 상진이의 엄마와 공식적으로 5번째 상담을 갖게 되었다.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어머님은 큰 키에 서구적인 외모, 털털하고 시원한 성격과 심지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가정과 일을 모두 가진듯 보이는 분이셨다. 보통 일곱 살 2학기의 상담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의 학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나누지만 그날은 상진이의 성취도에 대한 이야기 보다 아이가 얼마나 밝아졌고 개구쟁이가 되었으며 아빠를 살살 녹이는 애교쟁이가 되었는 지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우리에게 그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털어 놓으셨다. 엄마는 아빠와 멀리 떨어져 지낸다고 말씀하셨고, 한 동안 마음 공부를 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는 부부 사이에 있는 모든 일들을 함축적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듯 했다. (개구진 얼굴로) 몰라도 돼요~, 왜요?, 아니에요~, 아뇨 아뇨 아뇨~~ 라고 한 번도 교사의 말에 제대로 네~하는 법이 없는 개구쟁이가 되어버린 상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키는 어깨 바로 밑에 올 정도로 훌쩍 자라 있었고 큰 키만큼 아이에게 더 잘하길 모범이 되길 바라지만, 그 아이에게는 개구쟁이 삶이 더 중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부모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기에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아이의 마음의 깊이가 느껴졌다.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아이의 마음 말이다.

졸업식 날

성진이는 삼촌 품에 안겨서 우느라 끝내 나와 나의 파트너 교사에게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어머님께서 성진이 인생에서 선생님을 잊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로 성진이와의 인사를 대신하였다. 이제 아이가 졸업한지도 6녀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아이는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갈 것이다. 난 지금도 가끔씩 내게 보였던 그 깊은 눈을 잊을 수 없다. 개구쟁이지만, 한 편으로는 여린 마음과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만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조심스러운 아이의 모습. 그리고 지금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를 떠나 진심으로 이해받길 바라는 지 나는 상진이와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희미한 기억 속의 유치원 선생님, 누군지 모르고 나중에 찾을 길도 없었지만 한 때 그 아이에게 중요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건 의미있는 일 같다. 지금 어디 계신지 알 수 없고, 찾을 수도 없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나도 그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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