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핀테크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 / 정상용 센트비 대표

입력 2016-05-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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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여 동안 핀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여러 분야 중에서도 핀테크는 특히 신생기업으로서 개척하기가 힘든 분야라는 것이다. 우선 규제가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을 하고 대응하기가 쉽지 않고 비용 또한 많이 든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송금서비스를 하려면 Money Transmitter License를 각 주별로 취득해야 하는데, 절차가 복잡하고 주별로 최대 1년 이상 걸릴 뿐 아니라 취득을 위한 비용이 수억 원까지 들 수 있다. 또한, 고객의 돈을 다루는 만큼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규모의 회사라는 사실은 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핀테크는 스타트업이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분야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테슬라의 CEO이자 페이팔 마피아로 잘 알려진 일론 머스크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러한 일들 (전기자동차, 우주여행 산업 등)은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이것들을 현실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테슬라나 스페이스엑스 등과 같은 회사의 창업을 결정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를 비롯한 센트비 공동창업자들은 비트코인 시장이 성장하고 해외송금 규제가 완화되는 움직임을 보고 이를 이용해서 해외송금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 했었는데, 그때 우리가 바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일론 머스크는 백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진 돈을 전부 털어서 도전했고, 우리는 반대로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은행을 통하지 않고 해외송금을 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거의 무료로 송금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특성을 활용하여 비트코인을 송금의 매개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송금 국가의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하여 수취 국가의 거래소에서 제공하는 비트코인 지갑에 송금한 후, 이를 다시 현지 통화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송금을 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영국의 대표적 핀테크 기업 중 하나인 트랜스퍼와이즈가 활용하는 Pairing과 여러 송금 건을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함으로써 고정비용을 낮추는 Pooling을 결합한 Netting방식으로, 센트비 내에서는 앞글자를 따서 PPN방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센트비는 현재 필리핀 시장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한 첫 번째 방법으로 송금을 하고 있으며, 규제 완화와 함께 PPN방식을 도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한데 두 가지 방법 모두 특별히 비밀스러운 방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 은행은 이러한 방식을 직접 도입해서 송금을 하고 있지 않다.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몽골의 태양 에너지 시장에 대해서 언급을 한적이 있다. 태양 에너지 산업은 전력 수요가 높은 선진국들에서 많은 투자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도 좀처럼 성장하지 않고 있었는데, 역설적으로 전기를 거의 사용하기 힘든 몽골과 같은 시장에서 낮은 설비 비용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태양 에너지가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현재 센트비를 비롯한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마주하고 있는 시장이 바로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센트비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의 통화는 원화와 직접 거래되지 않으므로 달러를 매개로 하여 이중으로 환전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송금 수수료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 몽골의 태양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비트코인과 PPN방식은 이런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더 큰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은행으로서는 신규시장을 개척하기에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이미 점유하고 있는 큰 시장에 대한 자기 잠식이 발생할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동남아 시장에는 은행 거래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절반에 훨씬 못 미쳐서 은행을 통하지 않고 직접 돈을 수령하는 방법을 제공해야 하며, 이로 인해 은행이 가진 기존의 경쟁 우위도 활용하기가 어렵다. 시장이 어느 규모까지 성장할지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은행이 이러한 신규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며, 오히려 작고 가벼운 스타트업이 신규시장을 새로운 기술로 개척하는 데에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일 수 있다. 이것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스타트업이 핀테크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센트비는 2016년 1월 31일 필리핀 시장에 해외송금 서비스를 런칭한 이후로 현재까지 3개월여 동안 약 5천 건의 송금을 처리했으며, 많은 사용자가 서비스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인접 국가로의 확장을 앞두고 있어 성장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분명하고 탄탄한 수요를 기반으로 소액 송금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해외송금만이 아니라 금융 분야에 더 다양한 기회들이 열리고 있으니 많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대담한 도전을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정상용 ( 센트비 공동대표 / 한국핀테크포럼 국제송금 분과위원장 )


* ‘제1회 월드핀테크포럼 2016 서울’ 이 ‘화폐의 미래 : 아날로그 화폐에서 디지털 화폐로’라는 제목과 “화폐의 형태와 인프라의 혁신”이라는 부제로 2016년 6월 2일~3일 (목-금) 한국 거래소 (KRX, 이사장 최경수)에서 개최된다. 국제송금 전문가인 센트비의 정상용 대표는 이번 월드핀테크포럼 행사 첫날인 6월 2일 두번째 세션에서 “Toward Finances Sans Frontieres” 라는 제목으로 국제송금과 관련하여 강연할 예정이다.

벤처스탁팀(wow4989@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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