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커피·자장면 다 돼요"…당뇨 환자에게 '먹는 즐거움'을 주다

김종학 기자

입력 2018-06-01 10:26   수정 2018-06-03 08:08





    THE 메이커스 | 닥터키친 박재연 대표

    어려서부터 달고, 짜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당뇨 판정을 받은 뒤 부닥치는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끼니다. 설탕을 줄이는 바람에 맛 없어진 음식을 매번 욱여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3년차 스타트업 닥터키친은 식이조절에 지치고 실패했던 환자들에게 늘 먹던 밥상을 그대로 재현해 입소문을 탔다.

    ◇ 당뇨 환자들의 '맛집'

    닥터키친을 창업한 박재연 대표가 당뇨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건 당뇨를 앓고 있는 외삼촌 때문이다. 가족 모임에서 다른 음식을 선택해야 하기에 늘 메뉴 선택에 제약을 받았고, 어느새 모임은 함께 즐기기 어려운 자리로 변했다. 박 대표는 당뇨 환자가 건강을 이유로 지금까지 먹던 식단, 입맛까지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다 직접 바꿔보는 길을 선택했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은 트랜디하고 팬시한데, 삶에 필수적일수록 발전은 더디고 낙후돼 있어요.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와 음식입니다. '왜 몸에 좋은 건 꼭 입에 써야 하느냐'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 먹는 것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박재연 대표는 국내외 연구 논문과 사례를 뒤져가며 영양 균형을 갖춘 혈당 조절 식단에 대한 노하우부터 익혔다. 재료를 바꾸는 것부터 음식의 끝맛을 재현해내는 것에 공을 들였다. 탄수화물을 대체할 검증된 식재료와 설탕 대신 맛을 살릴 감미료로 한식과 양식, 일식, 중식까지 그의 손에서 재탄생했고, 환자들은 일반 식단과 비슷한 맛을 즐기며 탄수화물 함량은 3분의 2 이상 줄어든, 당질 함량도 최소화시킨 식단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식이요법, 다이어트에 왜 실패할까요? 인간의 욕망 중에서 아주 강한, 식욕과 맞서고 거스르기 때문에 실패한다고 봅니다. 너무 생소한 맛이나 너무 생소한 요리를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어떻게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레시피는 차돌박이 된장찌개, 마파두부, 명태조림, 석쇠불고기 등 가정식과 똑같이 구성됐다. 환자들은 칼로리, 영양분을 따져가며 장을 볼 필요도 없다. 또 야식같은 건 꿈도 못 꾸는 당뇨 환자들에게 연한 갈색의 믹스커피 맛을 살린 '다방커피', 밀가루와 전분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감쪽같은 자장면처럼 탈출구가 될 식단도 만들고 있다.

    맨바닥에 내려놓은 자존심

    박 대표는 사실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서야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세계 3대 컨설팅 업체인 베인 앤컴퍼니, 사모펀드 디렉터, 대기업까지 거쳐가며 경영 수업을 하고서야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경영 컨설턴트로 오랜 노하우와 화려한 이력에 전략을 준비해 뛰어든 창업이지만 박 대표도 스타트업 창업 이후 여러 고비를 마주했다.

    "제 입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자존심을 내려놓는 과정이었어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력과 포지션에 있었지만, 창업하고 나서 무언가 열심히 설명해야 하고, '자원의 제약 없이 일을 하다가 정말 손에 물 묻히면서 고생할 수 있겠어?'하는 의심을 깨는 게 어려웠습니다. 또 큰 회사라는 기반이 있을 때와 달리 맨바닥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략을 마련해 창업했음에도 막상 해보니 녹록치 않더라고요"

    처음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듣보잡'인 스타트업 사장이 되어 특급호텔 셰프들, 전문적인 당뇨 질환 식단으로 검증받기 위해 찾아간 의료진들로부터 박대를 당했다.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며 늦은 나이에 창업에 뛰어든 박 대표는 경력은 내려놓은 채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끈질기게 그들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당뇨 식단을 만들게 된 동기와 취지에 공감한 대형 병원들과 잇따라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카이스트 바이오뇌생명공학과 등을 통한 연구도 시작했다.

    ◇ 식이조절 생태계를 개척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고혈압이나 당뇨를 앓고 있는 사람은 850만 명에 육박한다. 의료계 추산으로 당뇨 위험군은 1천만 명을 바라볼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겪고 있지만, 완치가 어렵고 보험으로도 보장받기 어려운 질환이다. 약이 아니라 '식사'로 예방법을 만들겠다는 박 대표의 행보는 그래서 다르다.

    "당뇨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시작했는데도 달랐던 점은, 저소득 취약계층에 당뇨 환자가 꽤 많더라고요. 제 욕심은 가격대를 다르게 해서 서비스하는 게 맞다고 보지만, 스타트업이다보니까 고민스러운 단계입니다. 앞으로 회사 설비나 인력을 탄탄하게 쌓고, 기반을 넓혀서 소비자들의 경제력에 관계없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어요"

    박 대표는 식이요법 전문 회사로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련된 제도 신설부터 개발과 생산, 협업을 함께할 식품업체 등 정책과 식품업계 생태계를 넓히는 데도 집중할 계획이다.

    "식이요법 식단의 수요에 대한 속도와 양상에 있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미래에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생태계를 만들어야 되는 시점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뿐만 아니라 좋은 취지에 노력에 동참할 기업이 있다면 앞장서서 변화하는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싶은 게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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