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카야 <이네쵸>의 고장 이네쵸

입력 2019-02-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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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 지식인의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재조와 은일. 내 실력이 국가경영에 필요하면 조정에 나아갔고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 자연에 은거했다. 강호에서의 유유자적은 허송세월이 아니었다. 격조 높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현대의 엘리트들은 재조와 은일을 오가는 사이클이 짧아졌다. 은일의 공간도 굳이 도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서울 연신내에 현대 엘리트들의 쉼터가 들어섰다. 교토(京都)풍 프리미엄 이자카야 <이네쵸>다.

일본 교토는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륙의 교토, 하나는 바다의 교토다. 교토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내린 산맥이 바다와 만나는 곳. 거기서 산은 가볍게 바다를 포옹했다. 바다는 편안하게 산에 안겼다. 그렇게 산과 바다가 평온하게 공존하는 곳에 이네쵸(伊根町) 라는 어촌마을이 있다.

ㄷ자형으로 바다를 감싼 산은 높거나 우악스럽지 않다. 그저 바다바람을 막아주기에 적당한 높이다. 울창한 숲은 너른 바다와 하늘의 색깔을 닮아 푸르다.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푸름, 바다가 발산하는 푸름에 화답하듯 이네쵸 숲의 푸름 역시 눈부시다.

산 아래 해안선을 따라 집들이 들어섰다.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이네쵸 어부들의 안식처다. 정답게 어깨를 맞댄 집들의 구조가 이방인의 눈길을 끈다. 집들은 대개 2층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구조가 얼핏 베네치아의 수상가옥을 연상시킨다. 아래층은 작은 배를 정박시키는 주주장(駐舟場)이고 위층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이런 집을 후나야(舟屋)라고 한다. `이네`라는 동네 이름을 붙여 이네후나야 라고도 부른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뱃집`에 해당한다. 바닷물을 가옥의 1층까지 끌어들여 배를 매어둔 것이다.

집이 바다와 붙어 있다 보니 이런 식으로 가옥이 발달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아래층으로 내려가 고깃배를 몰고 바다로 나갈 수 있다. 마치 차고에서 바로 도로로 진입할 수 있는 육지의 집 구조와 똑같다. 이런 구조의 가옥들이 연이어 중첩된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후나야들이 늘어선 이네쵸 풍경은 이국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에도시대부터 짓기 시작한 후나야는 이제 이네쵸의 상징물이 됐다. 후나야 덕분에 후나야를 비롯한 마을의 산과 바다는 2005년(헤이세이 17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받았다.

후나야는 산을 아버지로 바다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산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선을 따라 한 쪽 다리는 산에, 한 쪽 다리는 바다에 걸쳤다. 석양에 산 그림자가 이네쵸 앞 바다에 드리울 무렵이면 후나야들도 제 얼굴을 바닷물에 비춰본다. 그때쯤 바다로 나갔던 고깃배들이 돌아온다. 저마다 이네쵸 앞 바다의 해산물을 가득 싣고 들어온다.

종일 평온했던 바다에 잠시 가벼운 파문이 인다. 물살에 비친 이네쵸의 후나야들도 가볍게 흔들리며 서로 자기 용모를 뽐낸다. 서울 연신내 <이네쵸> 전등에도 불이 하나 둘 들어온다.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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