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스카이캐슬'...초대형 입시비리 적발

입력 2019-03-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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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제대로 된 축구팀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한 미국 여학생이 `스타 축구선수`로 둔갑해 명문 예일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스카우트되는 데에는 부모님이 건넨 120만 달러(약 13억6천만 원)의 뇌물이면 충분했다.

학습장애가 있는 것처럼 속여 특별시험장에서 일반 수험생보다 더 오래 시험을 치른 한 고교생은 서부 명문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시험감독관이 이 수험생이 써낸 답을 나중에 정답으로 바꿔치기한 덕분이었다.

1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입시 비리 스캔들이 전모를 드러내면서 유명 연예인과 기업인 등 부자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과 일부 대입 컨설턴트의 거침 없는 불법 행위가 커다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매사추세츠 연방지방검찰청과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결과 발표로 공개된 이들의 천태만상은 마치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일부 부유층의 과도한 교육열을 꼬집은 국내 드라마 `SKY 캐슬`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드라마에서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역을 연상시키는 `미국판 김주영`이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 소재의 입시 컨설팅업체 `에지 칼리지&커리어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윌리엄 싱어는 30년 가까이 입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대학 운동부 감독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시험을 알선하는 등의 수법으로 부유층 자녀들에게 명문대 합격을 선사했다.

그가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대학 감독과 직원들, 입학시험 관계자들을 매수하기 위해 학부모들로부터 건네받은 뇌물은 무려 2천500만 달러(약 28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선 싱어는 부유층 수험생들의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미리 매수한 감독관들이 있는 휴스턴과 로스앤젤레스(LA)의 특별시험장에서 SAT(미국 대입시험)와 ACT(미국 대학 입학 지원을 위한 시험)를 치르도록 했다. 뇌물을 받은 감독관이 수험생의 답안지를 고쳐 원하는 성적을 받도록 해준 것이다.

법원에 제출된 수사 자료를 보면 싱어는 수험생이 학습장애자를 위한 특별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다면 "ACT는 30점대, SAT는 1천400점대를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ACT의 만점은 36점이고, SAT의 만점은 1천600점이다. 그 대가로 학부모가 낸 돈은 7만5천 달러(약 8천500만 원)였다.

한 예로 글로벌 사모펀드회사 TPG의 파트너 윌리엄 맥글래션 주니어는 싱어의 조언대로 아들이 이틀에 걸쳐 천천히 대입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학습장애를 가진 것처럼 꾸몄다.

싱어는 맥글래션에게 결혼 등의 핑계를 대서 자신이 매수한 감독관이 있는 휴스턴이나 LA의 시험장에서 아들이 시험을 보게 하라는 지시도 했다. 그러나 맥글래션의 아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험생은 자신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수사당국은 밝혔다.

글로벌 법무법인 `윌키 파 & 갤러거`의 공동대표인 고든 캐플런은 자신의 딸 스스로도 알아차릴 수 없는 교묘한 수법으로 시험 성적을 조작할 수 있다는 싱어의 제안에 7만5천 달러를 선뜻 내주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내세워 대리시험을 치르게 하거나 건당 1만5천∼7만5천 달러에 입학시험 관계자를 매수해 정답을 빼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NYT는 전했다.

이 외에 수험생의 인종과 기타 신상정보를 위조해 대입 과정에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의 특혜를 볼 수 있도록 주선한 일도 있었다.

가장 흔한 수법은 부유층 자제들을 체육특기생으로 위장하는 일이었다.

싱어는 일명 `열쇠`(The Key)라고 불리는 자신의 컨설팅업체와 비영리재단을 활용해 학부모들이 준 돈을 세탁한 뒤 예일대와 USC, UCLA, 스탠퍼드대, 조지타운대, 텍사스대의 각 종목 감독과 행정당국자 등에게 뇌물로 건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싱어는 해당 수험생들의 소속팀과 수상 경력을 지어내는 등 프로필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험생이 스포츠 활동에 참여한 것처럼 사진을 위조하거나,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진짜 운동선수의 사진에 수험생 얼굴을 합성하기까지 했다.

예일대 부정입학 사건의 경우 싱어는 학부모로부터 120만 달러를 받고 이 수험생이 캘리포니아 남부의 유명 축구팀 공동주장이었던 것처럼 경력을 위조하고, 예일대 여자축구팀 감독에게 40만 달러(약 4억5천만 원)의 뇌물을 줬다.

조정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학생의 사진을 위조해 조정 경력이 있는 것처럼 꾸며 USC 조정 특기생으로 입학시킨 사례도 적발됐다.

이번 입시 스캔들은 너무나 경쟁이 치열하고 살인적인 대학 입시 탓에 일부 학부모가 부정행위의 유혹에 빠져드는 과정을 부각한다고 NYT는 진단했다.

그러나 부유층 학부모들의 입시 부정은 성실히 입시를 준비한 다른 학생들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앤드루 랠링 연방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의 진짜 희생자는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라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의 입시 전문가 아룬 폰누사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싱어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에 비유하면서 "그가 입시업계에서 한 일은 마이클 코언이 법조계에서 한 일과 비슷하다"며 "그는 교육 컨설턴트가 아니라 해결사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수사에 전국적으로 200명이 넘는 요원을 투입해 50명을 기소한 수사당국은 앞으로 더 기소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캘리포니아의 입시 컨설턴트 윌리엄 싱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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