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의 별세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숨은 주역`들이 회동하면서 제4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속도가 붙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과 맞물려 남북 간 대화 역시 가시적 진전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진 회동이 반전의 계기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2일 서호 통일부 차관, 장례위원회를 대표하는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과 함께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만나 조화와 조의문을 전달받았다.
조화와 조의문을 주고받기 위한 만남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회동한 인사들의 면면은 현재 꽉 막혀 있는 비핵화 정세를 푸는 여건을 마련할 비중을 지닌 인물들이라 할 만하다.
정 실장과 김 부부장은 외교·안보 현안과 관련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서, 앞선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정 실장과 함께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 논의를 위해 문 대통령의 특사로 두 차례 방북했던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이 자리에 배석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만남에서 정 실장과 김 부부장 등을 통해 현 상황과 관련한 남북 정상의 의중을 주고받았다면 이날 회동은 단순히 조의문을 주고받는 자리가 아닌, 답보 상태인 남북 대화에 물꼬를 틀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북측의 조의 전달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남북정사담고 관련한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당연히 오늘은 조의문·조화 수령 때문에 만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윤 수석은 그러나 "조의문·조화 수령과 관련한 부분만 일단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해 이날 만남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모종의 메시지가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윤 수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김 부부장이 남측의 `책임 있는 인사`에게 직접 조의를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김 위원장의 언급 역시 북측도 남북 정상회담 성사 주역들의 접촉에 적잖은 비중을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문 대통령이 조기에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할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는 점은 정 실장을 통해 북측에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메시지를 건넸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보탠다.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오슬로 대학교 법대 대강당에서 이뤄진 오슬로포럼 기조연설 후 패널들과의 문답에서 "저는 김 위원장과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말에 방한하는데, 가능하다면 그 이전에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다만 이날 `판문점회동`이 조화와 조의문 전달을 위한 자리였던 만큼 심도 있는 의견이 오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최근 각종 남북교류협력 사업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에 호응하지 않으면서도 매체 보도 등을 통해 외세와 공조하지 말고 남북 공동선언의 근본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북측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 실장과 김 부부장 간 회동에도 불구하고 이달 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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