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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내년 1월 독자 가상화폐 ‘리브라’ 발행...힘 받는 '중앙은행 변신론'과 ‘화폐 개혁론’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6-24 10:59  



페이스북이 내년 1월부터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독자 가상화폐인 ‘리브라(Libra)’를 내년 1월부터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한때 최고점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던 각종 가상화폐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각국 중앙은행은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가상화폐 시대에 맞춰 변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징 먼저 중앙은행 목표부터 가상화폐 시대가 전개될 것에 맞춰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천사와의 키스’만 할 것을 주장해 왔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악마와의 키스’라 할 정도로 금기해왔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거래수단으로 온라인과 모바일의 발달로 물가는 추세적으로 안정돼 왔다. 날로 격화되는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최종상품의 가격파괴로 ‘월마트 혹은 스마트폰 효과’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의 물가는 중앙은행이 설정한 물가 목표선을 하회하고 있다. 가상화폐 시대가 전개되면 물가는 더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만을 고집하기보다 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악마와의 키스’가 ‘천사와의 키스’로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이미 Fed는 2012년 12월부터 물가안정과 고용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으며,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제롬 파월로 이어지는 전·현직 Fed 의장은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해 왔다.
금융위기 이후 전·현직 Fed 의장의 이런 시각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이다. 이 준칙은 Fed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두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정책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용목표에 도움되면 물가가 일시적으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Fed는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에 의해 산출된 적정금리를 토대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두 준칙도 단순히 물가상승률에 성장률을 더해 금리의 적정성을 따지는 피셔 공식과 달리, 중앙은행이 물가와 성장 등 여타 거시경제 목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유럽과 일본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 양적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음에도 경기회복에는 한계를 맞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종전의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은 한계에 크게 노출되는 만큼 ‘최적통제준칙’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전·현직 Fed 의장의 주장은 어떤 경우든 물가 목표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른 준칙과는 대조적이다. 통화론자는 특정국이 금리 등을 변경할 때 ‘통화 준칙(monetary rule)’에 의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테면 한국은행의 인플레 목표선이 2%일 때 이보다 물가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정책(기준)금리를 올려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준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물가 이외의 고용 등 다른 목표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기준금리 변경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적통제준칙에 의한 금리결정방식이다. 통화론자 입장에서 보면 ‘악마 중의 악마와의 키스’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유럽중앙은행(ECB)조차도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인 법화(法貨·legal tender)를 갖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등의 혐의로 의심받는, 즉 하버드대 케네스 로코프 교수가 주장한 ’현금의 저주(curse of cash)’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화폐개혁 필요성이 증대되고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실제 추진한 국가도 의외로 많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 새롭게 도안해 2013년에 발행했다. 이듬해 일본은 20년 만에 10,000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선보인데 이어 2015년에는 중국, 작년 말에는 인도네시아가 신권을 내놓았다.
화폐거래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국가도 있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 북한 등이 대표적인 국가다. 작년 11월 인도는 전체 화폐유통물량의 86%를 차지하는 구권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 500루피, 2,000루피로 교체하는 변형된 화폐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같은 시점에 베네수엘라도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나라는 가상화폐 투기가 심하다. 투기 광풍 뒤에 버블이 터지고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부패도 심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기득권에 대한 혐오증도 최고조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도 기득권을 개혁하고 부패를 청산해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를 구축해 달라는 국민의 촛불 열망 속에 태어났다.
법화 시대에 있어서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더 그렇다. 특히 경제활동 비중이 놓은 대기업과 부자,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어떤 형태든 화폐개혁의 추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선진국은 이런 전제조건의 성숙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은 부패 청산과 기득권을 손볼 목적으로 전제조건 충족 여부보다 상황논리에 밀려 급진적인 방안까지 동원해 추진했다. 이점이 결과의 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도입했던 5만원권을 폐지하자는 등 화폐개혁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 국민의 화폐생활이 변하는 만큼 화폐개혁도 논의하고 필요하면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다른 신흥국의 전철처럼 상황논리에 밀려 추진하면 실패로 끝나고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국민(주로 부자와 기득권층)도 화폐개혁은 무조건 반대하면서 가상화폐 투기와 같은 돈 버는 데는 앞장서는 이중적인 태도는 버려야 한다.

화폐개혁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가상화폐가 확산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노력은 시급하다. 첫째, 본원통화의 대체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부분을 가상화폐와 대안화폐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보면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의 감소를 의미한다. 특히 화폐발행차익 감소는 통화정책 수행비용의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가상화폐와 대안화폐를 누가 발행(가상화폐는 법정화)하느냐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중앙은행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가상화폐와 대안화폐를 발행할 경우 현금보유 성향의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크게 약화된다. 또 가상화폐와 대안화폐를 현금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경우 발행주체와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심할 경우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가상화폐와 대안화폐의 발달로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데에는 예상과 달리 떨어지고 있다. 통화승수이론에 따르면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통화승수에 의해 결정되고 통화승수는 현금보유비율과 지급준비율에 따라 좌우된다. 그만큼 고액권을 중심으로 현금이 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가상화폐와 대안화폐의 발달은 여러 각도에서 통화정책의 전달경로(통화공급 조절→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성장률 혹은 물가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 가상화폐와 대안화폐의 발달로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서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금리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다섯째, 가상화폐와 대안화폐에 따른 본질적인 문제와 함께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중앙은행의 예측력을 강화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다른 전망기관보다 늦게 그것도 예측력이 월등히 높지 않고서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거나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모델 재설정, 시계열 일관성 유지, 정성적 평가 등에 보다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신뢰를 확보하는 과제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를 끌어 올리는 데도 중요하다. 가상화폐와 대안화폐 확산 등으로 갈수록 불확실하고 길어지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자주 바꾸거나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예측치를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여섯째, 통화정책 추진 과정에서 흐트러진 정책수단과 중간조작, 최종목표 간 인과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테면 중앙은행 입장에서 성장과 물가 간 우선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금리조작이냐 통화량 변경이냐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추세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서는 중앙은행 목표(물가안정 이외 고용창출 등 다른 목표 인정), 통화정책 관할범위(자산시장 포함 여부), 적정금리 산출방식(테일러 준칙과 최적통제준칙 간 선택), 감독범위(빅 브라더 문제), 통화정책 운용방식(제한적 재량방식과 통화준칙에 의한 방식 간 선택) 등도 재설정하거나 결정해야 한다.
일곱째, 가상화폐와 대안화폐 확산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맞게 새로운 통화지표를 개발해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을 정확히 추정해야 한다. 갈수록 가속력이 붙을 가상화폐와 대안화폐 발행에 대한 규제와 위조지폐 방지 등을 통해 ‘폐지 혹은 무용론’까지 불고 있는 현찰의 위상도 강화해야 할 때다. 각종 가중치와 산출방식 현실화를 골자로 한 통계개편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모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돼야 한다. 고유권한인 금리결정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와 대안화폐 발달 등에 따라 우려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하는데 밤낮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관행대로 통화정책을 추진했다간 효과는 고사하고 독립성과 신뢰성에 손상을 받으면서 ‘중앙은행 축소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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