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살해 치매노인, 2심서 '집행유예'…"인간의 존엄성 고려"

입력 2020-02-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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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60대 치매노인이 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감경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0일 오전 고양시의 한 병원에서 열린 치매 노인 A씨의 살인혐의 항소심 사건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형사재판은 통상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한 상태에서 열린다. 그러나 이날 재판은 이례적으로 재판부가 피고인이 입원 중인 병원에 직접 찾아가 진행했다.
A씨는 2018년 12월 아내 B씨를 폭행하고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정신 질환에 대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하고 질병으로 장기간 수감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이 양형에 고려됐다.
A씨가 구치소 수감 중 면회 온 딸에게 "왜 엄마와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등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작년 9월 주거를 치매 전문병원으로 제한하는 치료 목적의 보석 결정을 내렸다. 치료적 사법을 구현하기 위해 치매 환자에게 내려진 첫 보석 결정이었다.
치료적 사법은 법원이 개별 사건의 유·무죄 판단을 내리고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유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 선고 장소도 A씨를 치료 중인 병원의 한 작은 사무실로 정했다. 다만 공판 절차는 법정에서와 다르지 않았다.
환자복 차림에 마스크를 쓴 A씨는 병원 직원이 끄는 휠체어를 타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몸에 힘이 없는 듯 A씨는 재판 중에는 고개를 떨군 채 자리를 지켰다.
이날 검찰은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도 "검사로서는 국가기능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며 A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씨의 자녀는 재판에서 "아버지가 병원에 있으면서 병원이라고 인식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안타깝다"며 "증상이 악화하는 부분은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계속 치료하며 모시겠다"고 밝혔다.
A씨에게도 최후진술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A씨는 건강의 이유로 제대로 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했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받은 1심보다 크게 감경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다만 5년의 집행유예 동안 보호관찰을 받고, 구치소가 아닌 치매 전문병원으로 주거를 제한해 계속 치료받을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피고인에게 교정시설에서 징역형을 집행하는 것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실형을 선고하는 것보다 치료 명령과 보호관찰을 붙인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계속 치료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변호인은 이날 선고에 대해 "법원과 검찰, 피고인의 가족들 그리고 치료병원의 적극적 협조와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전향적 판례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치료법원과 같은 제도가 정비돼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고 환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그의 가족에게는 오늘 모든 사법절차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 치료를 위한 치료적 사법절차는 계속됨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원이 법정 밖에서 판결을 선고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하반신 마비 등으로 인해 법정 출석이 곤란한 피고인을 위해 재판부가 직접 피고인의 거주지로 찾아가 형을 선고한 바 있다.
아내 살해 치매노인 집행유예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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