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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재난지원금 놓고 벌이는 국가채무 논쟁…한국, 부도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4-27 09:04   수정 2020-04-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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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향연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 6년 전 「머니 볼」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는 ‘빚의 복수(Revenge of Debt) 시대가 들이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어느 국가보다 빚이 많은 우리 국민에게 가장 가슴 깊게 파고드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경고다.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과 ‘실물경기 회복’이라는 미명아래 금리를 제로 수준(유럽, 일본은 마이너스)까지 내리고 돈을 푸는 것을 마치 미덕인 것처럼 합리화됐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경제주체는 ‘저리의 빚’이라는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왔다. 그 기간도 10년 이상 길어져 빚의 무서움도 잊혀져갔다.
세계 빚(국가+민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우리 돈으로 20경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국내총생산(GDP)대비 250%로 임계치인 200%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세계 인구 74억 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한다면 3천 500만 원에 달한다.

문제는 세계 빚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그 대신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재정지출 요인도 가세됐다.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3년 전 출범했던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데 주력해 왔다. 케인즈 이론이 태동한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유사해 ‘트럼프-케인즈언 정책’이라고도 부른다. 미국 재정적자는 2011년에 이어 ‘또다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급증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MT)에 트럼프 대통령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점이다. MMT의 핵심은 이렇다. 물가에 문제가 없는 한 재정적자(쌍둥이 이론에 의해 무역적자도 포함)와 국가부채를 두려워하지 말고 달러를 찍어 써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MMT는 달러 가치와 관련해 종전의 ‘트리핀 딜레마’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 예일대 교수인 로버트 트리핀이 주장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도 간 상충관계를 말한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부채 증가로 신뢰가 떨어져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유럽도 코로나 사태를 낮아 양적완화를 재추진하면서 재정정책과 분담시켜 나가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일본도 ‘금융완화(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이론적 근거 제시)’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정책(혼다 에쓰로 영국 대사가 이론적 근거 제시)‘으로 이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재정수입 면에서는 대폭적인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1980년대 초 ‘레이건노믹스’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인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보면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을 ‘표준 지대(normal zone)’, 부(負)의 구간을 ‘비표준 지대(abnormal zone)’라 부른다.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대부분 국가가 법인세를 내렸다.

재정지출과 감세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재정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최소한 경기가 살아나기까지 늘어날 재정적자를 국채로 메운다면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국채금리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한 나라의 금리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채금리가 상승할 경우 정책금리도 인상해야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 등 선진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자국의 경기여건과 관계없이 금리를 올려야 금융시장과 경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
금리와 채권가격은 반비례 관계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국채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함에 따라 채권가격은 투자자가 대응할 시간도 없이 ‘순간 폭락(FC·Flash Crash)’ 현상을 보였다. 앞으로 국채금리가 더 상승하면 ‘국채시장→주거용 부동산 시장→신흥국 증시’ 순으로 FC의 전염효과가 우려된다.
IMF를 비롯한 예측기관이 빚 부담을 연착시키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에 복합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기준금리 등 정책수단이 제 자리에 복귀되지 않은 여건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경제주체의 빚 상환능력과 가처분소득이 더 떨어지고 정책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밝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나라는 가계 빚이 많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민간부채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대비 민간부채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이 3.1% 포인트다. 주의(2%p 미만 ’보통‘, 2∼10%p ’주의‘, 10%p 이상 ’경고‘) 단계다.
단순히 빚이 많다고 반드시 무서운 것은 아니다. 빚 상환 능력, 즉 소득이 받쳐준다면 저금리 시대에는 빚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경기나 개인의 재테크 차원에서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여건에서 임계치에 도달한 빚을 더 늘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오히려 빚을 줄이는 것이 우선순위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미 빚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의욕만 앞세워 과도하게 빚을 줄이면 가득이나 안 좋은 경기를 더 침체시킬 수 있다. 2018년 11월말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들어 금리를 올린 것이 그 이후 이자부담 증가로 우리 경제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끌어 내렸다.
그런 만큼 가계 빚 대책을 세울 때 가처분소득(총소득-이자 등 각종 비용)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가계 빚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경우 이자 경감분보다 소비성향이 높은 자산소득이 감소해 경기를 둔화시킬 우려가 높다. 환금성의 높은 아파트의 경우 역자산 효과계수는 ‘0.23(아파트값 1% 하락 때 소비 0.23% 감소)’으로 높게 나온다.

가계부채에 이어 최근에는 코로나 지원금 지급 문제를 놓고 국가채무 논쟁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재정은 민간과 다르다. ‘양입제출(量入制出)’을 지향하는 민간은 흑자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양출제입(量出制入)’을 전제로 하는 재정은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채무가 발생해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면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덜 걷고 재정지출도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에서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재정 건전성은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로 평가한다. 선진국은 100%, 신흥국은 70% 이내면 재정이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선진국은 신흥국보다 국가 신뢰도가 높아 재정 운영에 있어서 여유가 많다는 의미다. 일본처럼 최종 대부자 역할이 저축성이 높은 국민에게 있을 때는 국가채무 비율이 250%에 달해도 국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적다.
특정국의 재정이 건전한 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가채무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는 포함대상과 채무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협의 개념은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현시적 채무, 광의 개념은 협의 개념에다 공기업의 현시적 채무, 최광의 개념은 광의 개념에도 준정부 기관 그리고 모든 기관의 묵시적 채무까지 포함된다.
한국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국가채무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특징이다. 협의 개념으로는 44%, 광의 개념으로는 73%, 최광의 개념으로는 145% 내외다. “재정이 건전하다”, “국가부도가 곧 닥친다”라는 극과 극의 주장이 함께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글로벌 투자은행과 국제평가사 한국 포스트의 시각이다.
국가채무 논쟁보다 재정을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채무는 후손 세대에게 빚을 지는 만큼 복지 등 단순 이전성 항목이나 공무원 급여 등 일반 경직성 항목에 과다 지출돼서는 안 된다. 경기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에 집중시켜 후손 세대의 채무상환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쓰여 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한국은 유난히 논쟁이 많은 나라다. 모든 경제현안이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국가채무, 외환위기, 화폐개혁 등 고질적인 3대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종전과 다른 것은 3대 논쟁의 출발점이 정책당국과 집권당인 민주당이라는 점도 눈에 띤다. 특히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는 문제를 놓고 국가채무 논쟁과 함께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 국민은 어떻게 보겠는가.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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