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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발 ‘쩐(錢)의 전쟁’…환율전쟁 더 복잡하게 전개된다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5-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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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평가절하→평가절상 경쟁으로
중국, '디지털 통화 전쟁' 포문

국제통화질서 역사상 작년 하반기 이후 올해 초 미국과 중국 간 1차 무역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가장 긴박했던 시기의 하나로 평가된다. 위안화 평가절하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 간 환율 전쟁을 치르는 일보 직전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환율전쟁이 더 복잡한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가치는 미·중 무역마찰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마찰이 심화되면 ‘절하’, 진전되면 ‘절상’되기 때문이다. 작년 5월 10일 미국의 보복관세가 부과되기 직전까지 달러당 6.6위안대로 절상되던 위안화 가치가 그 후 추세적으로 절하되면서 넘지 말아야 할 포치(破七), 즉 ‘1달러=7위안’선이 뚫렸다.
그 누구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황했다. 위안화 절하는 자신이 주력해왔던 보복관세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포치선이 뚫리자마자 곧바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5년 역(逆)플라자 합의(달러 강세 유도 협정) 이후 사라졌던 ‘환율 조작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다른 교역국에까지 충격을 줬다.
작년 8월 중국에 대한 환율 조작국 지정은 두 가지 점에서 미국의 전통을 지키지 않은 파격적인 조치에 해당한다. 하나는 예정된 ‘시기’를 지키지 않은 점과, 다른 하나는 정해진 ‘규칙’을 어겼다는 점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공약을 지키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조치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의회의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때릴 수 있다. 무역적자 축소와 함께 ‘2020 대선’에 최대 약점인 재정적자를 관세 수입으로 메울 수 있어 매력적인 카드로 취임 직후부터 시기가 문제이지 언젠가는 부과할 것으로 예고돼 왔다.
환율 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는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최대 관심사였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대폭 절하하고 미국도 달러 약세로 맞대응할 경우 환율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볼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직전 상황과 비슷하다는 우려가 나온 것도 이 시기다.
환율 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은 무역과 환율과의 비연계성을 강조했다. 위안화 대폭 절하 대응은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경상거래 면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자본거래 면에서는 자본 유출을 초래해 금융위기 우려가 높아진다. 중국의 대외 위상을 높이는 ‘팍스 시니카’ 구상도 물 건너 갈 가능성이 높다.
1차 무역 협상안 공식 서명 마감일 직전 미국은 중국에 내렸던 환율 조작국 지정을 전격 해제했다.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중국도 앞으로 2년 동안 미국산 제품을 2,000억 달러 이상 구매키로 약속했다. 양국 간 무역마찰에 따른 세계가치 사슬 붕괴로 ‘침체’ 일보까지 몰렸던 세계 경제로 봐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궁금한 것은 중국에 대한 환율 조작국 지정 해제와 1차 무역 합의안 서명 이후 양국 간 환율 전쟁에 대한 우려가 해소됐는가 여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NO(아니다)’다. 코로나 사태와 지난 5월 1일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계기로 환율전쟁이 더 복잡하게 전개될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세계경제질서와 국제통화질서가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뼈 속까지 느끼게 한다. 뉴 노멀이란 종전의 이론과 규범,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통하는 노멀과 대비시켜 붙여진 용어다. 미래 예측까지 어려우면 ‘뉴 애브노멀’로 구별한다.
코로나 책임론을 놓고 미·중 간 마찰이 재현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종전의 입장을 확 뒤집는 두 가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하나는 세계화의 종언을 표방하면서 “중국과의 모든 거래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하나는 취임 이후 유재해 왔던 달러 약세 입장을 철회하고 ‘지금은 달러 강세가 맞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경제 분야에서 가장 먼저 현실로 닥치고 있는 변화가 세계화의 퇴조다.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된다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에 이어 ‘탈세계화(deglobalization)’’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의 이동까지 제한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급자족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범세계주의’보다 ‘보호주의’가 지속되는 추세에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수출’보다 ‘내수’, ‘오프쇼오링’보다 ‘리쇼오링’, ‘아웃 소싱’보다 ‘인 소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극우주의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리는 과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사후 평가와 함께 이에 따른 책임론이 불거진다.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지 수가 줄어들기 시작함에 따라 마차 입을 맞춘 듯이 각국이 ‘뉴딜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자금자족 성격이 강해지는 여건에서는 재정정책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위험수위에 도달해 뉴딜 정책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힘든 여건이다. 국가부도 위험을 무릅쓰고 적자 국채를 발행해 마련한 재원을 지출한다 하더라고 구축 효과로 경기부양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 미국 의회 예산국(CBO)에 따르면 재정지출 승수효과는 1930년대 3.5배에서 1.5배 내외로 낮아졌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유일한 희망이 실물 경제에 들어가지 않고 떠다니는 그 많은 돈이다. 금융위기 이후 `헬리콥터 벤` 식으로 뿌려진 막대한 돈이 회수되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더 많은 돈이 풀렸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코로나 사태가 해결되기까지 ‘최종 대부자 역할(lender of last resort)’을 포기해서라도 무제한 돈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각국이 돈을 끌어들이는 ‘쩐(錢)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있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돈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리거나 환차익을 제공해야 한다.
‘쩐의 전쟁’에 가장 강력한 무기인 금리는 더 이상 동원할 수 없는 용도 폐기된 수준이다.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려놓았기 때문이다. 차선책은 자국의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환차익을 제공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화 종언과 함께 달러 강세를 선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이외 국가도 ‘쩐의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통화 가치를 올려서 자국 내 돈 이탈을 방지하고 다른 나라에서 돈을 뺏어 와야 한다. 환율 전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화와 수출에 익숙했던 노멀 시대에 환율 전쟁은 ‘평가 절하’ 경쟁인데 반해 탈글로벌화와 내수를 지향하는 뉴 노멀 시대에는 ‘평가 절상’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우리 외환당국과 기업, 그리고 달러 투자자는 이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환율 전쟁의 본질을 바꿔놓을 뿐만 아니라 지난 5월 1일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계기로 그 성격도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가 발행한지 불과 1개월도 채 못 되는 기간에 의외로 빨리 정착될 여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정착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각국 중앙은행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이미 오래전부터 특별 대책반(TF)을 구성해 연구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양대 경제대국인 중국과 미국이 디지털 통화를 도입한다면 현재처럼 시스템이 없는(non system) 국제통화질서에 커다란 변화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축통화 면에서는 디지털 위안화와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디지털 달러화가 도입한 이후 디지털 위안화 간 2차원적인 환율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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