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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국제통화질서…강달러 시대 다시 오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2-04-25 08:05  



2020년대 국제통화질서는 두 가지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 사태가 2년 이상 장기화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 따라 미국이 주도가 된 러시아 제재로 달러 결제망(swift) 등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는 점이다.

앞으로 국제통화질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기축통화가 도입될 만큼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는가와, 다른 하나는 그동안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해 왔던 달러화가 과연 새로운 기축통화에게 그 역할을 넘겨줄 수 있는 것인가 여부다.

2008년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2009년 리먼 사태, 2011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조치 등을 계기로 달러 가치가 흔들리면서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에 묵시적으로 유지돼 온 `제2 브레튼 우즈체제`가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브레튼 우즈체제란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제2의 브레튼 우즈체제란 1971년 닉슨의 금 태환 정지 선언 이후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골간으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묵시적인 합의에 따라 유지해온 환율제도를 의미한다. 미국이 이 체제를 유지해온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숨은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기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제2 브레튼 우즈체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 제2 브레튼 우즈체제를 제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의 부흥과 공산주의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했던 마셜 플랜의 또 다른 형태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후 제2 브레튼 우즈 체제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 무렵이다. 일본, 한국 등 아시아 통화에 대한 의도적인 달러화 강세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더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여러 방안을 동원했으나 결국은 선진국 간의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제2 브레튼 우즈체제에 또 한 차례 균열을 보이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와 아시아 외환위기다. 역플라자 합의에 따라 미 달러화 가치가 부양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로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간의 구도가 재현됐다. 역플라자 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79엔에서 148엔이 될 정도로 강한 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의 이름을 따 `루빈 독트린`이 전개됐던 시기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그린스펀·루빈 쇼크(Greenspan & Rubin’s shock)`가 발생했다. 미국도 슈퍼 달러의 부작용으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됐다. 쌍둥이 적자 이론에 따라 미국은 경상수지적자가 확대되면 재정수지적자도 확대된다.

강한 달러 시대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자국 통화의 약세라는 반사적인 이익을 누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무역수지 흑자가 대폭 확대됐다. 국민 경제 3면 등가 법칙(X-M=S-I, X: 수출, M:수입, S:저축, I:투자)에 따라 아시아 국가의 과잉 저축분은 미국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한때 세계경제 대통령이라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이 자산 거품을 해소하기 위해 2004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중국의 국채 매입으로 시장금리가 더 떨어져 자산 거품이 심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 1> 2차 대전 이후 국제통화질서 변천 (자료 : 한국은행)



거품 붕괴 모형에 따라 자산 거품을 떠받치는 돈이 더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터진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실체다.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과 달러처럼 기축 통화국의 지위를 바탕으로 레버리지 투자(증거금대비 총투자 금액)가 활성화돼 있는 미국에서 자산 거품이 터지면 자국의 금융사는 마진콜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금융시스템이 무너지고 2009년 리먼 사태와 같은 대형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Fed는 전시 때나 사용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동원했다. 대공황관련 연구를 가장 많이 한 밴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은 한꺼번에 두 단계 이상 내리는 ‘빅 스텝(big step)’ 방식으로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렸다. 유동성 공급도 무제한 국채를 사주는 양적 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정책으로 마치 공중에 떠있는 헬리콥터가 물을 뿌리듯이 돈을 풀었다.

브라운 방식으로도 알려진 Fed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달러 가치와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특정국가가 금융위기 극복과 경기 부양을 위해 자국통화를 평가 절하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인접국이나 경쟁국에게 전가된다.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특히 미국과 같은 중심국이자 기축 통화국에서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하면 그 피해는 경제발전단계상 한 단계 아래 국가에 집중된다. 중국, 한국 등 대부분 아시아 국가가 해당된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길게는 스미드소니언 체제 포함)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국가 간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system) 혹은 젤리형 시스템(jelly system)"으로 지칭된다. 그 결과 킹스턴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전보다 느슨하고 불안한 형태로 유지돼 왔다.

시스템이 없는 국제통화제도하에서는 기축통화의 신뢰성이 크게 저하되더라도 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새로운 기축통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는 없다. 유일한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대외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지만 무역수지 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없다. 새로운 기축통화 논쟁과 함께 글로벌 환율전쟁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수지적자와 국가채무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 효과`라 볼 수 있다.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재차 강화될 경우 제3기에 해당한다. 외형상 여건은 형성돼 있다. 유럽, 일본, 중국 등 미국 이외 국가는 양적 완화, 마이너스 금리제도 등을 통해 금융완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달러화 가치는 강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달러화 강세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 경제는 완전치 못하다. 달러 강세에 따른 경기 부담은 의외로 크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계량 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이 무려 0.75%포인트(p)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이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가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달러 강세가 재현된다면 언제든지 침체국면으로 떨어짐 위험이 높다. 현실화된다면 `제2의 에클스 실수`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재무장관이 잊을 만하면 대미 흑자국을 중심으로 환율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달러화를 대신할 수 있는 세계단일통화에 대한 논의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금 본위제`로 돌아가는 방안이다. 금 본위제란 금과 달러화 교환비율을 고정시키는 국제결제시스템을 말하는 것으로 세계 무역량이 급증할 때에는 한계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금 태환 정리를 선언할 때까지 제1기 브레튼우즈 시대에서는 금 본위제가 유지됐다.

금 본위제 부활은 달러 기축통화국인 미국 공화당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위기 타개책으로 제시돼 왔던 단골 메뉴였다.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80년대 초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 하에 물가가 올라가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지자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특별 위원회까지 설치해 금 본위제 도입을 검토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미트 롬니 당시 공화당 후보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 편향돼 있는 Fed의 통화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금 본위제 부활을 공론화시킨 적이 있었다. 로버트 졸릭 당시 세계은행 총재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자신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을 길들이기 위해 화폐 개혁을 통해 금 본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금 본위제 부활 논의는 그 자체만으로 재테크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 본위제 부활에 대비해 금 확보에 나서면 금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금 본위제 부활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2011년 한국은행은 외화보유통화 다변화 차원에서 금 96톤을 사들였다. 국내 시중은행도 1930달러 초반대였던 금값이 3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을 근거로 금을 사둘 것을 추천했다. 결과는 대규모 국부와 재산 손실만 가져다줬다.

앞으로 달러를 대신해 금 본위제를 부활시키려면 가장 큰 전제조건인 충분한 금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유지해 왔던 금 본위제가 1971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던 것은 늘어가는 세계 교역량에 맞춰 달러화 가치를 금으로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 금 본위제 부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계 교역규모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표 1> 주요 통화의 국제통화로서의 국제화 정도

주 : ●는 기준을 완전 충족, △는 일부 충족, ×는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함 (자료 : 국제통화기금, 한국은행)

유로화 탄생의 산파역이자 `미래 화폐`의 저자인 버나드 리태어 벨기에 전 루벵대 교수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각종 투기적 공격에도 안전한 세계 단일통화인 `테라(Terra)`를 창설하자"고 주장했다. 라틴어로 `지구`라는 의미의 테라가 만들어질 경우 현재 세계 단일통화 부재에 따른 거래비용 부담과 투기 문제를 해결하고 통화정책의 유용성까지 높아져 세계 경제 성장과 국제금융시장 안정을 기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화폐가 탄생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테라 창설은 가능한가. 이 우문(愚問)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테라를 어느 기관에서 발행하고 화폐 가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를 `테라 구상`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는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리태어 교수의 주장에서 중요한 테라의 발권 기능은 원자재 생산업자가 참여하는 `테라연합(Terra alliance)`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테라 연합이 국제상품의 수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테라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근거에서다. 테라의 화폐단위는 주로 원유, 밀, 구리, 주석 등 국제상품을 표준화한 바스켓에 의해 매겨진다. 이에 따라 바스켓에 포함된 상품 시세가 변할 경우 테라의 실질가치도 변하게 되므로 각국의 물가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견해다. 거래적 수요, 예비적 수요, 투기적 수요 등 화폐의 3대 기능도 국제무역 결제에 사용되는 무역용 화폐로 못 박고 있다.

문제는 이런 테라의 출현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테라를 창설할 경우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게 될 테라 연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의문시된다. 하나는 테라 바스켓을 구성하는 현물교역이 세계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에 그쳐 테라 연합의 대표성과 신뢰성에서 한계가 있다. 다른 하나는 국제 상품시세가 그 어느 가격변수보다 변동이 심해 테라의 가치 유지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된다. 오히려 테라 연합 회원국이 담합해서 테라 바스켓을 구성하는 상품을 무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또 다른 화(禍)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화폐의 세 가지 기능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가상화폐와 대안화폐 활성화로 거래적 기능보다 갈수록 화폐의 가치 저장과 투기적 기능이 중시되는 추세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테라와 다른 화폐가 병행해 사용될 경우 테라가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은 테라 구상에서는 통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테라와 같은 새로운 화폐 발행을 통한 글로벌 통화 구상은 논의 차원에만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모든 거래에서 절대적인 결제 비중을 갖고 있는 미국 달러화가 더 빠른 방안이 될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 안정 차원에서 미국 달러화를 공식 화폐로 채택해야 한다는 `달러라이제이션`과, 새로운 국제 통화제도로 환율 움직임에 상하 제한폭을 설정하는 `목표 환율대`가 테러 논의보다 더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한국경제 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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