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IT(정보통신) 인력을 활용해 불법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미국 기업에도 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는 2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북한 IT 인력 활동 관련 한미 공동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의 북한 IT 인력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들은 미국 기업에 의해 때때로 고용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부대표는 구체적인 기업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이들 기업 중 일부는 해킹까지 당해 장기적인 피해를 봤다"며 "이들은 아시아에서 중동, 아프리카 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모든 곳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이 버는 돈은 (보통의) 북한 노동자보다 훨씬 많을 수 있지만, 그중 90%는 북한 정권에 징수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미 양국은 북한 IT 인력이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외화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주도하는 군수공업부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부대표는 "유엔 추산에 따르면 이들 IT 인력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에 매년 5억 달러 이상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앤 뉴버거 사이버·신기술 담당 부보좌관은 북한이 IT 활동으로 미사일 프로그램 자금의 절반을 조달하고 있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박 부대표는 또 "이들(북한 IT 인력들)은 해킹을 위한 웹사이트를 개발해 북한 해커들을 지원하고, 심지어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관련 물품 조달도 도왔다"며 "북한 국경이 다시 개방되면 IT 인력의 위협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최근 미국 법무부는 북한 IT 인력이 미국 시민으로 신분을 위장해 미국 기업에 취업한 사례를 적발했다"며 "이와 같은 일은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유엔 제재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이 IT 인력을 통해 불법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사례가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본다.
외교부에 따르면 유엔 제재로 북한 인력의 외화벌이가 막히자 IT 인력들은 미국 등 다른 나라 사람의 신분증을 사거나 다른 나라 사람에게 구인구직 플랫폼에 대신 신청을 요청하는 수법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특히, 이들은 코로나19로 대면 면접과 출근이 크게 줄어들고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는 점을 십분 이용했다.
영상 면접에는 대리인을 쓰는가 하면, 취업 후 영상 근무는 최소화하고 직접 통화와 메시지로 업무를 처리하며 신분을 숨겨왔다.
소프트웨어 앱 개발 및 관리 등 비교적 간단한 업무에서부터 블록체인이나 가상자산 등 고급 기술 분야에서도 일감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들은 돈이 되거나 취약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은 어디든 이용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제도가 허술한 나라에 많이 가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전날 북한 IT 인력의 국외 외화벌이 활동에 직접 관여해 온 북한 기관 3곳과 개인 7명을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 재무부도 개인 1명과 기관 4곳을 제재했다.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독자 제재는 이번 정부 들어서만 7번째다. 이전 정부까지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총 5번이었다.
그만큼 북한 핵 위협이 커지면서 국제사회에 경각심을 주는 동시에 북한이 직접적인 압박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외교부와 미 법무부, FBI를 비롯해 약 20개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북한 IT 인력의 활동 수법과 한미 정부의 노력, 기업 등의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외교부 이준일 북핵외교기획단장은 "북한 IT 인력이 세계 유수의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일감을 수주하고 세계적인 결재 시스템을 통해 자금을 세탁하는 행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세계 IT 중심에서 이번 심포지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비공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미국의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트인과 페이팔 관계자 등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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