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부터 숨가쁘게 올려왔던 금리인상 국면이 지난 6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에서 일단 멈춰 1단계가 마무리됐다. Fed 뿐만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도 경기와 증시, 그리고 통화정책 여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피벗(pivot), 즉 인플레를 잡기 위한 금리인상을 중단하고 언제 내릴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Fed가 피벗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첫 금리인상 때부터 안고 있었던 태생적 문제였다. 2021년 4월 소비자물가(CPI)상승률이 ‘쇼크’라 부를 정도로 높게 나왔는 데도 ‘일시적’이라고 오판해 오히려 물가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온 Fed가 뒤늦게 인플레를 잡기 위해 강력한 ‘볼커 모멘텀’으로 대처해 왔다.
볼커 모멘텀은 인플레가 잡히는 가닥만 보이면 그 명분이 급속히 약화된다. 미국의 CPI상승률이 작년 6월 9.1%를 정점으로 안정되기 시작해 지난 6월에는 3%로, 불과 1년 만에 3분이 1수준으로 급락했다. Fed의 인플레 목표치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통화정책의 시차가 9개월에서 1년인 점을 감안하면 피봇을 추진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되는 것도 피벗을 단행해야 할 또다른 요인이다. Fed가 경기예측기법으로 신뢰하는 장단기 금리역전은 그 격차가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100bp(1bp=0.01%p, 2년물과 10년물) 이상으로 벌어졌다. 1970년 이후 미국 경기는 최근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 예외 없이 침체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정책적으로도 Fed가 인플레만을 잡기 위해 더이상 주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강달러 유도를 통한 인플레 수출정책은 중국 등 다른 국가들로부터 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는 중간선거 이후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미국 재무부의 바이 백(buy back)을 통한 유동성 공급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1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지금의 전황으로 보면 하반기 들어서는 평화협정, 러시아 패전 등 어떤 형태로든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유럽 경제는 발목을 잡았던 지정학적 위험과 에너지 위기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유로화 가치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피벗은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Fed 회의에서 나타난 수정된 점도표(최고금리 5.7%)와 같은 달 인플레 지표를 토대로 금리인상 경로를 추정해 보면 7월 회의에서 한 차례 금리를 올린 이후 올해 말까지 한 차례 더 인상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동결될 것인지는 유동적이다.
하지만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들의 어록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기대하고 있는 금리를 내리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날로 악화되는 미국 국채시장의 신용경색을 푸는 직접적인 방안도 못된다. 이 때문에 양적긴축(QT)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이 피벗의 차선책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심도있게 논의될 인플레 타켓팅선을 상향 조정하면 금리인상과 QT 속도롤 조절할 수 있어 제3의 피벗 대안이 될 수 있다. Fed가 인플레 잡기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상황에서 인플레 타켓팅선을 현재 2%에서 3%(혹은 4%)로 올리면 테일러 준칙에 따른 적정금리를 같은 폭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Fed의 통화정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금리 결정권을 갖은 FOMC 보드 멤버들이 대거 교체된 점이다. 지난해 금리가 말이 뛰는 식으로 인상된 데에는 FOMC 보드 멤버들이 강한 매파 성향의 위원들도 채워졌기 때문이다. 최고금리를 7%까지 올려야 한다는 제임스 블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자이언트 스텝을 주도한 로레타 메스트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와 에스터 조지 캔사스시티 연은 총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말에 열렸던 올해 첫 Fed 회의부터 이들이 빠지는 대신 오스턴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 로리 로건 댈라스 연은 총재 등과 같은 비둘기파 성향을 지닌 인사들이 새롭게 들어왔다. 비둘기파인 레이얼 브레이너드 통화정책담당 부의장이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입김이 더 세지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Fed의 금리정책에 잣대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최고금리를 하향 교차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인플레 잡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임금과 물가 간 악순환 고리(wage-price spiral)가 차단될 확률이 높아졌다는 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집값도 올해부터는 인플레 지표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과 물가 간 악순환 고리는 기대 인플레를 바탕으로 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제품 가격에 전가시키고 이에 근로자들이 임금인상을 다시 요구하면 물가 상승이 본격화된다는 이론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도 소비자물가가 1%포인트 오르면 임금 상승률이 4분기 시차를 두고 0.3∼0.4%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이후 인플레를 잡기 위한 볼커 모멘텀을 추진한 이래 Fed의 금리정책은 기준금리를 올리면 그 수준을 오랫동안 유지해 나가는 ‘go-stop-hold’ 원칙을 유지해 오고 있다. 벌써부터 9월 Fed 회의가 관심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물가가 잡히는 상황에서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는 ‘슬로우세션(slowcession)’에 빠지면 금리를 내리는 방안이 거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Fed의 통화정책 향방과 관련해 또하나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그린스펀 수수께끼’, 즉 기준금리 인상 폭 만큼 시장금리가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다. 2004년 금리인상 당시에는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으로 이 현상이 나타났으나 작년 9월 이후에는 Fed 자체요인에 기인하고 있어 문제가 더 심각하다.
Fed는 제1선 목표인 인플레를 ‘일시적’이라 오판해 선제적인 대응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고용과 경기예측이 크게 빗나가 시장 참여자로부터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 작년 마지막 회의 이후 Fed와 파월 의장은 피벗 추진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기대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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