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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한국 단체관광 허용을 계기로 재조명되는 ‘설러번 패러다임’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3-08-14 07:53  


중국이 무려 6년 동안 금지해왔던 자국인의 단체관광을 허용한 것을 계기로 대한국 정책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과 같은 움직임은 지난 5월에 열렸던 중앙아시아 국가 간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 주목을 받아왔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의 실체는 게임이론을 통해 보면 명확해진다. 각국 간 관계를 조명할 때 자주 활용되는 이 이론은 참가국 간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쉬식 게임’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섀플리-로스식 게임’으로 나뉜다. 디커플링은 이기적 게임인 전자에, 디리스킹은 공생적 게임인 후자에 해당한다.


<그림 1> PMI로 본 세계 경제 동향


1970년대 들어서자마자 ‘핑퐁 외교’로 상징되는 미·중 간 관계는 ‘커플링(coupling·동조화)’에서 출발했다. 올해 100세를 맞은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이끌어냈다. 닉슨의 방문 이후 베트남 종전이 선언된 데 이어 1979년에는 미·중 간 국교가 수립됐다.

국교 수립 이후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미·중 간 관계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된다. 1989년 존 윌리엄슨 미국 정치경제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 개념은 중국을 포함한 비서구 국가를 글로벌화와 시장경제에 편입시켜 궁극적으로 미국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전략을 말한다.

미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중국의 대외경제정책 기조인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 오히려 2차 대전 이후 전범인 독일을 포함한 유럽 부흥에 기여했던 ‘마샬 플랜’이라 부를 정도로 중국이 성장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중국의 WTO 가입은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에 이르기까지 대중국 편향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중국이 없으면 대외경제정책이나 기업경영전략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중국 경제는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국민총소득(GNI)이 WTO 가입 직전 미국의 17% 수준에서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기 직전에는 55%로 3배 이상 높아졌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글로벌 시대에 동참해 급성장한 것은 미국에 도움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과의 경제패권 경쟁자로 키우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중 관계가 커플링에서 디커플링으로 변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중국 중심의 세계경제질서인 팍스 시니카 야망을 꿈꾸었던 시진핑 주석은 취임하자마자 대외경제정책 기조를 ‘주동작위(主動作爲·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로 급선회했다. 행동계획으로 일대일로, 위안화 국제화, 제조업 2025, 디지털 위안화 기축통화 구상 등 중국의 세력 확장 전략인 베이징 컨센서스를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두 컨센서스 간 충돌이 정점에 이른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대중국 견제전략인 ‘나비로 패러다임’을 추진할 때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수 시절부터 초강경 중국론자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함무라비 법전식으로 중국을 철저하게 배제해 나가는 디커플링 전략을 추진했다.

‘대중국 견제’라는 관점에서 나바로 패러다임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직전 중국의 GNI는 미국의 75%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골드만 삭스 등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임을 가정해 집권 기간인 2027년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시진핑 주석의 팍스 시니카 야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림 2> 미국 경제 성장경로

자신의 집권기간 중 경제패권을 중국에 넘겨준다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대 굴욕이다. 위기감을 느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의 주역으로 앉힌 제이콘 설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세계 국가의 3분의 2가 무역파트너로 삼고 있는 중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미국의 강점인 네트워크와 첨단기술 우위를 더 강화하는 스파이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설러번 패러다임’으로 일컫는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견제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창립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각국 간 놓여있는 무역장벽 해소해 세계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GATT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국가가 참여해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노동집약국과 자본집약국 간 안행(雁行)적 성장격차 모델 여건에서는 중국처럼 뒤늦게 참가한 국가일수록 고성장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순으로 이어지는 초연결사회에서는 글로벌화의 필요성은 급속히 약화된다. 오히려 규모의 이익, 외부경제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기업 위치, 자금 확보원, 공급망 등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자급자족(autarky) 성장모델이 더 효과적이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공정한 경쟁여건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인 설러번 패러다임처럼 기득권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일수록 유리하다. 독수리가 하늘을 높이 날수록 까마귀의 약점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인 나바로 패러다임처럼 독수리가 까마귀와 동등한 위치에서 싸우면 소리(마찰)만 심해질 뿐이다.

설러번 패러다임은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켜는 지경학적 우위를 지키는 것이 지정학적 우위를 점하려는 글로벌 시대의 패권 다툼과 구별된다. 안보를 연계시키는 경제도 금융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금융이 실물경제를 뒤따라가는(following) 지위에서 선도하는(leading) 지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행동계획도 주도면밀하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을 환류시키는 리쇼오링 정책을 주력해왔다. 당장 미국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기업은 ‘니어쇼오링’과 ‘프렌즈쇼오링’ 정책을 병행해 동맹국으로 이전시켰다. 동일한 차원에서 금융에서도 리플럭스, 니어플럭스, 프렌즈플릭스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대체라는 의미의 ‘Alternative’와 아시아의 ‘Asia’ 간 합성어인 ‘알타시아(Altasia)’로 이정시키는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탈세계화’라는 거센 뉴노멀 트랜드를 읽지 못하고 세계화의 막차를 탔던 중국과 같은 글로벌 포모(FOMO?Fear of Mossing Out)국가는 ‘쇼크’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성장률은 국민총소득(GNP)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산출해왔다. GDP 성장률은 외국기업과 자금이 들어올 때는 더 높아지지만 이탈할 때는 더 떨어지는 ‘순응성’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10년 전 시 주석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외국기업의 이탈세는 중국의 연간 성장률을 1% 포인트 이상 훼손할 정도까지 심각해지고 있다. 기업별로는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렉스, 구글, 엔비디아, 마이크로 소프트, 테슬라 등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경제와 글로벌 증시를 주도하는 ‘메가 캡 8’이 이탈하고 있는 점이 중국으로서는 더 우려된다.

시 주석이 영수로 등극한 이후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공산당 대회가 끝나자마자 제로 코로나 대책을 풀면서 리오프닝 효과를 크게 기대했던 시 주석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양회 대회 이후 채권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자금 이탈세도 심상치 않다.

최근처럼 외국인 자금이탈이 심할 때는 중국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뭐를 해더라도 안되는 ‘정책 무력화 명제’에 봉착한다. 금리인하, 유동성 공급 등을 통한 신규자금 유입 효과보다 외국인 자급이탈에 따른 배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국가부채가 많은 여건에서는 재정지출은 구축 효과가 발생해 경기에 도움되지 않는다.


<그림 3> 전형적인 불황에 빠진 중국 경제

최악의 상황이 직면한 중국은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중앙아시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랭경온(政冷經溫·정치 군사적으로 냉랭한 관계 속 경제적으로 친밀한 관계)’ 기류로 바뀌면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잇달아 초청하고 있다. 수정된 워싱턴 컨센서스인 ‘설러번 패러다임’이 재조명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키는 추세에서 문재인 정부의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진 디커플링 정책이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세계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디리스킹 전략인 ‘안미경세(安美經世)’로 나가야 한다. 중국의 한국 단체관광 허용을 계기로 한·중 관계가 공존을 모색하는 시대가 열렸으면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국경제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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