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에도 일하라니…'폭염엔 쉴 권리' 급부상

입력 2023-08-28 06:18   수정 2023-08-28 07:14


6월19일 코스트코 하남점 주차장에서 카트와 주차 관리 업무를 하던 김동호(29)씨가 휴식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최종 사인은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 김씨의 스마트폰 앱엔 사망 당일까지 사흘간 하루 평균 3만6천보(22㎞)를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당시 경기 하남시엔 체감온도가 이틀 연속 35도가 넘어 폭염경보가 내려졌었다.

20대 젊은이였던 김씨의 몸도 버티지 못한 폭염 속 노동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한국의 여름이 예전같지 않은 만큼 적어도 폭염엔 쉴 권리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하는 흐름이다.

◇ '침묵의 살인자' 폭염…5년간 온열질환 산재 23명

여름철 35도가 보통이 되면서 폭염은 일터에서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8월24일까지 올해 전국 폭염 일수는 14.1일로 평년(1991∼2020년)의 10.5일을 훌쩍 넘어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폭염을 가장 위험한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사망자와 피해자가 항상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다"고 짚었다.

폭염이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이유다.

최근 5년간 23명이 일터에서 열사병, 탈진, 열경련 등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산재로 승인받지 못했거나 신청조차 안 한 '비공식' 사례까지 더하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성실의 미덕으로 견디기엔 최근 폭염 상황은 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20일∼ 8월23일 온열질환자는 2천632명, 추정 사망자는 31명이다. 질병청이 온열질환 감시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올해가 2018년(온열질환 4천526명·사망 48명)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가장 많았다.

이 기간 온열질환자 발생 장소는 실외 작업장이 32.9%(365명)로 가장 많았고 실내 작업장도 7.0%(185명)나 차지했다. 논밭(14.1%), 길가(9.9%), 집(6.2%), 운동장·공원(5.7%) 등 온열질환은 실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 '물·그늘·휴식' 3대 수칙은 권고사항일 뿐

폭염에 쉴 권리가 법에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고온 등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보건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사업주 보건조치를 규정한 하위 법령의 구체성이 떨어져 결국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온열질환을 막는 3대 기본 수칙으로 물과 그늘, 휴식을 꼽는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66조(휴식 등)는 근로자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히 휴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휴식'의 구체적 기준은 없다.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을 통해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씩 쉬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노동부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탓에 현장에선 사실상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관련 사항을 구체적 규칙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이달 초 토목건축 노동자 3천20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1.7%가 "폭염에도 별도 중단없이 일한다"고 답했다.

◇ '폭염엔 쉴 권리' 제도화 해야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체감온도 33도, 35도가 넘어도 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휴게시간이 없다며 이달 1일 폭염 대책을 촉구하는 파업을 벌였다.

폭염엔 쉴 권리에 대한 요구가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노동 조건이 다 달라 모든 사항을 법령에 묶는 건 사실상 어렵다"며 "필요하다면 시행령을 정비하되 현재 가이드라인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공장은 여름철에 관행적으로 일주일 정도 가동을 멈추는데 폭염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만큼 이 기간을 넓히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며 "서비스 산업은 중단이 쉽지 않아서 추가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계는 작업중지권과 휴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법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조건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열사병은 더위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나빠질 수 있고 같은 조건이라도 노동자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며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노동자 증가 등 변화된 노동환경에 발맞춘 폭염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작업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배달업 등 특수고용직에는 폭염을 이유로 작업을 중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플랫폼 배달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노동자는 아스팔트 복사열과 차량이 내뿜는 열기를 받으며 일하는 데다 헬멧 등 안전 장구까지 착용해야 한다"며 폭염시 작업 중지를 '일시적 실업'으로 간주하고 통상 수입의 70%를 지급하는 '기후실업급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기상청 자료와 배달 플랫폼을 연동해 폭염시 주문 접수를 중단하고 작업 중지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제언도 나온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조시형  기자

 jsh1990@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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