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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역주행 이유는?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4-07-01 09:20   수정 2024-07-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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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개봉됐던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요즘 들어 다시 역주행한다고 한다. 8년 전에도 논란이 거셌지만 대중영화인 만큼 사실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 부도’라는 커다란 사회적인 이슈를 던진 만큼 역주행하는 시기에 우리나라의 국가 부도 재발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를 점검해 보는 것은 시대적인 책무다.

국가 부도 재발 가능성을 점검하기에 앞서 개념부터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는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 않지만 재정 위기로 본다면 잘못된 것이다. 우리 재정은 건전하다. 재정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1년 전이나 지금도 신흥국 위험수준인 70%(IMF 신개념상으로는 60%)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국가 부도는 외환 위기다. 엄격히 따진다면 외환 보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컸지만 나라 밖에서는 위기가 곧 닥친다고 경고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 경제 각료는 ‘펀더멘털(경제기초여건)이 괜찮다’는 안이한 경기진단과 대처, 그리고 부처 간 갈등이 궁극적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데 초점을 맞춰 이 영화는 전개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내외 상황을 보면 미국과 다른 국가 간 따로 노는 ‘대발산(Great Divergence·GD)’이 시작됐다. GD가 시작됐던 1994년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은 정책금리를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같은 시점에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정책금리를 5%에서 4.5%로 인하했다.


<그림 1>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 추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5년 4월에는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루빈 독트린’ 시대가 전개됐다. 루빈 독트린이란 당시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이 달러 강세가 자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됐던 슈퍼 달러 시대를 말한다. 엔·달러 환율의 경우 달러당 79엔에서 148엔까지 급등했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New Economy) 신화’를 낳았다. 경제 위상도 높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 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전후 최장의 호황기를 누렸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잇달아 발생(‘그린스펀·루빈 쇼크’라 부른다)했다. 미국도 슈퍼 달러의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2000년 이후에는 ‘IT 버블 붕괴’라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8년 전 국가 부도의 날이 상영될 당시 ‘GD’가 다시 시작됐다. Fed는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2014년 10월 말 양적완화(QE) 종료에 이어 이듬해 12월부터 금리를 인상했다. 출구전략이란 금융위기로 흐트러졌던 비정상 국면을 정상 국면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푸는 것’보다 ‘회수하는 것’이 더 어려운 통화정책 관행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험난한 길이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중앙은행(ECB)는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하고 양적완화 시한을 연장했다. 당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추가 금융완화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도 빼놓지 않았고 그 후 필요할 때마다 실행에 옮겨왔다.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행(BOJ)도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도입했다.

Fed와 ECB(다른 선진 중앙은행 포함)는 실물경제 여건 면에서 격차가 크지 않는 한 동일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한 묵시적인 합의 때문이다. Fed와 ECB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은 1994년 이후 21년 만에, 1999년 ECB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트럼프 정부 1기의 달러 정책도 출범 초 약달러 정책은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돼지 못함에 따라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취임 이후 강달러 정책으로 바뀌었다. 신흥국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2 루빈 독트린’이라 불리는 ‘커들러 독트린’ 시대가 전개됐다.

2018년 3월 Fed의 금리인상 이후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 이어 6월 Fed의 금리인상 이후에는 터키 등 중동 국가, 9월 Fed의 금리인상 이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연속된 Fed의 금리인상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할 국가도 늘어났다.

최근 들어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개봉될 때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Fed의 금리인하 시기는 갈수록 지연되고 있다. 올해 최대 6차례까지 예상됐던 금리인하 폭도 1∼2차례로 축소됐다. 미국 대통령 선거 1차 TV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부상한 데다 라스트 마일 부주의로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Fed보다 늦게 금리를 올렸던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선진 7개국(G7) 국가 중에서는 특수환경에 처한 일본은행(BOJ)와 영란은행(BOE)를 제외하고는 4개국이 금리를 내렸다. 대부분 신흥국 중앙은행도 선진국 중앙은행보다 먼저 금리를 내렸다.

Fed와 ECB(다른 선진 중앙은행 포함)는 실물경제 여건 면에서 격차가 크지 않는 한 동일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한 묵시적인 합의 때문이다. Fed와 ECB를 비롯한 다른 중앙은행이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은 1994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현재 우리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2선 외화(캐나다와 맺은 상시 통화스와프 제외)까지 포함한다면 5300억 달러가 넘는다. 30년 전 외환위기가 발생할 당시 외환보유액인 300억 달러보다 무려 17배 이상 늘어났다. 가장 넓은 의미의 캡티윤 방식에 의한 적정외환보유액인 3800억 달러보다도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 경제 앞날과 관련해 경착륙,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 일본형 복합불황, 베네수엘라 사태 등 각종 비관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책당국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애써 강조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도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 각료가 보여준 펀더멘턴론과 비슷하다.


<그림 2> 2018년 고용지표 추이 <그림 3> 2018년 물가상승률 추이

일부 정책결정과 집행자는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역주행하는 국가 부도의 날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 골드만삭스의 외채상환계수 등으로 평가해 보면 국가 부도(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게 나온다. 하지만 ‘국가 부도의 날’에 관객이 다시 몰리는 것은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정책당국의 안이한 경기진단과 대처 그리고 부처 간 갈등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수장으로 한 경제팀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가 부도의 날이 역주행할 정도로 불안한 우리 국민의 심리부터 안정시켜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경제팀과 마찬가지로 ‘시간만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경제정책과 운용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삶은 개구리 신드룸(boiled frog syndrome)’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그때는 국가 부도가 재발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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