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대상국 지정 제외 보장하는 합의는 아냐”

한미 재무당국이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긴다는 내용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이 과도하게 불안할 때만 고려하고 무역 경쟁을 위한 통화 가치 조작은 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러한 환율정책 합의로 한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1일 미국 재무부와 합의한 환율정책의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 합의는 지난 4월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2+2 통상협의'에서 미국 정부 요청으로 환율 분야가 통상 협의 의제로 올라온 뒤 관세 협상과 별도로 이뤄진 한미 재무당국의 고위·실무급 협의를 거쳐 마련됐다.
이번 합의로 우리나라는 일본, 스위스에 이은 세 번째 대미 환율정책 합의국이 됐다.
한미 재무당국은 이날 합의문에서 "효과적인 국제 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수출 호조로 원화 수요가 늘어 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가격이 상승해 무역수지 악화 요인이 된다. 결국 원화 수요는 다시 줄고 원화 가치도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무역수지가 적자 혹은 흑자의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변동환율제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런 '국제수지의 조정' 효과를 방해할 수 있는 인위적인 통화가치 조작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한미 당국 간 합의의 취지다.
구체적으로 '거시건전성 또는 자본 이동과 관련한 조치'는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단기 투자 목적의 이른바 '핫머니'의 환율시장 교란을 막기 위한 조치도 '경쟁적 목적', 즉 물건을 싸게 팔기 위한 환율 조작에 동원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또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고려돼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때 개입은 '환율의 방향과 관계없이 대칭적'이어야 한다고 명시됐다. 통화가치 절하·절상 중 어느 한쪽의 경우에만 개입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현재 분기별로 공개되는 시장 안정 조치는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월별로 미국 재무부에 공유하기로 했다.
월별 외환보유액과 선물환 포지션은 국제통화기금(IMF) 양식에 따라 공개한다. 이는 이미 정부가 이행 중인 내용이다. 연도별 외환보유액 통화 구성 정보도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기재부는 이번 합의와 관련해 현재 정부의 환율 정책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양국 재무당국 간 긴밀한 소통과 신뢰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미 재무당국이 환율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모니터링 대상에 외환시장 '안정'을 추가했다는 점을 의미 있는 성과로 꼽았다.
최근 미국과 유사한 환율정책 합의를 한 일본·스위스의 합의문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하기 위한 정부의 중장기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합의가 한·미 간 무제한 통화스와프 추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정여진 기재부 외화자금과장은 "당연히 포괄적으로 모든 시장 안정과 관련된 협업을 요청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이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3,500억달러 투자금'을 두고 양국간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선불'이라며 현금 지급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무제한 통화스와프 등을 필요 조건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번 합의가 한국이 11월에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환율조작국 우려가 사실상 해소됐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현재 미국은 2015년 제정된 무역 촉진법에 따라 자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국의 거시 경제와 환율 정책을 평가해 일정 기준에 해당할 경우 심층분석국 또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평가기준은 ▲150억 달러(약 20조3,500억원)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에 해당하는 경상 수지 흑자 ▲12개월 중 최소 8개월 간 달러를 순매수하고 그 금액이 GDP의 2% 이상인 경우 등 세가지다.
이 중 두 가지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 세 가지 모두 해당하면 심층분석 대상이며 이후 협의 불이행 시 환율조작국이 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상태다.
미 재무부는 최근 이와 별도로 "정량적 기준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환율 개입의 의도·투명성 등 정성적 요건을 함께 고려해 지정할 수 있다"며 사실상 정량 평가보다 '정성 평가'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을 시사한 바 있다.
정 과장은 "관찰대상국은 환율보고서가 발간되는 11월경 정량적 수치에 따라 결정된다"며 "대신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면 정성평가가 반영되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미국이 원화 절상을 직접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됐지만, 이번 합의문에는 관련 내용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등 투명성 강화 방안이 정부의 개입 여지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원화 절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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