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IEA가 역대 최대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전략비축유(SPR) 투입을 확인했지만 이날 국제유가는 되레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지 않는 가운데 민간 상선 세 척이 이란 혁명수비대의 공습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장 마감 이후 S&P500 선물과 나스닥100 선물이 각각 0.8% 수준의 추가 하락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뉴욕 증권거래소(NYSE) 정규거래에서 S&P 500 지수는 6,775.80, 나스닥은 0.08% 오른 22,716.14로 보합권에 그쳤다. 반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89포인트 넘게 하락한 47,417.27을 기록했다. 현지시각 오후 8시 기준 다우존스 선물 지수는 0.85%, 약 400포인트 추가 하락해 4만 7,042선까지 밀렸다. 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공포지수로도 불리는 Cboe VIX(변동성지수)는 24.23으로 여전히 20을 넘는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 역대 최대 비축유 풀었지만…국제유가 되레 5% 상승
이란 전쟁의 여파로 전세계 에너지 공급 위기 가능성이 깊어지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파리 본부에서 32개 회원국 긴급회의를 열고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는 IEA 50년 역사상 최대 규모로,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1억 8,200만 배럴)의 두 배를 넘는다.
파티흐 비롤(Fatih Birol) IEA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우리가 직면한 석유시장의 도전은 규모에서 전례가 없다”며 “회원국들도 유례없는 긴급 행동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오하이오주 유세에 앞서 찾은 신시내티 지역 방송사 WKRC와의 인터뷰에서 전략비축유 방출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금 줄여서 가격을 낮추겠다, 다 쓰면 다시 채우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이러한 조치에도 이날 장중 브렌트유는 93달러 근처까지 뛰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4월 인도분은 5.7% 오른 88.27달러에 마감했다.
이런 가운데 WSJ와 영국 해상무역작전(UKMTO) 등에 따르면 이날만 화물선 3척이 이란 해안 인근에서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해군은 태국 국적 컨테이너선 마유리 나리(Mayuree Naree)호가 해협 통과 중 이란 혁명수비대의 사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날 마유리 나리호 외에 라이베리아 국적 컨테이너선을 비롯해 두바이 북서쪽 지점에서 추가 한 척이 피격된 것으로 나타났다. ABC 방송 등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태국 국적 선박과 라이베리아 국적 두 척의 공격만 인정한 상태다. 지난달 28일 전쟁 개시 이후 UKMTO에 접수된 사건은 17건(피격 13건, 의심 활동 4건)이며, 국제해사기구(IMO) 집계로는 최소 7명의 선원이 숨졌다.
전날 백악관 캐롤라인 리빗 대변인은 미국의 유조선 호위는 현재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군은 이란의 무력 위협이 완화될 때까지 민간 선박 호위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미국은 상업용 보험사인 처브를 미국 개발금융공사 주도 상선 통행 안전과 환경 영향을 보호를 담보할 전담 회사로 지정했다.
에너지 시장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주 소재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 방문 중 기자들에게 "이란 해군은 궤멸됐고 유가는 내려갈 것"이라면서 "그들에겐 전쟁이지만 우리에겐 예상보다 쉬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2주 가까이 공습을 이어가는 가운데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이란 대통령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X, 옛 트위터)에 "러시아·파키스탄 정상과 통화했다"며 "이란의 합법적 권리 인정, 배상금 지불, 향후 공격에 대한 확고한 국제적 보장"을 전쟁 종결의 3대 조건으로 제시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이란이 지역 중재자들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향후 이란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전쟁 종료 후 이스라엘의 재공격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유화적인 입장과 달리 이란 최고지도자 관할의 군 고위 대변인은 국영TV를 통해 "보복 타격 정책은 끝났다, 이제부터 지속해 공격하겠다”며 “배럴당 200달러에 대비하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마렉스(Marex) 에너지 마켓의 사샤 포스(Sasha Foss) 애널리스트는 "IEA 비축유는 며칠을 벌어줄 뿐이고, 이번 주말까지 분쟁이 끝나지 않으면 유가는 다시 100달러 위로 갈 것"이라고 했다. 긴장이 수주 내 완화되더라도 유가가 올 초의 60~70달러대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같은 날 발표된 미국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시장 예상과 대체로 부합했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2.5%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고차와 자동차보험이 각각 0.4%, 0.3% 하락해 물가 부담을 줄였고, 실질 임대료가 0.1% 상승에 그치는 등 주요 항목에서 안정세를 보였다. 다만 가정용품이 연연간 3.9% 오르는 등 일부 관세 영향으로 인한 물가 상승 요인도 나타났다.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칼 와인버그(Carl Weinber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보고서에서 "다음 CPI부터 물가는 급등할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 상승이 항공료·운송비뿐 아니라 식품과 기타 상품에까지 파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월 데이터는 이란전쟁(2월 28일 개전) 이전 수집분이어서 시장 반응은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 1위 JP모건, ‘소프트웨어 대출’ 담보 가치 축소 경고
이란 전쟁의 파장이 길어지는 가운데 사모대출(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에서는 대형 은행의 신용 조이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전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은 사모대출 펀드들에 대해 담보로 잡은 대출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인하하겠다고 통보했다. 통보 대상은 인공지능(AI) 확산 과정에 사업 기반이 약화한 소프트웨어 기업 대출이다. 이들에 대한 담보 가치를 낮추면 JP모건이 보장해주는 대출 한도도 따라서 줄게 된다.
JP모건 상업·투자은행 부문 공동 CEO인 트로이 로르바우(Troy Rohrbaugh)는 지난 2월 애널리스트 설명회에서 "세계가 변동성이 커지면 이런 결과를 예상해야 한다”며 선제적인 대응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월가는 이러한 부실 대출 가능성을 피하려 JP모건 외에 나머지 대형은행들의 대출 한도가 축소되면서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 소식으로 인해 이날 아레스 매니지먼트가 4.8%, KKR은 2.7%, 블랙스톤과 아폴로 글로벌 등이 2% 넘게 하락했다.
사모펀드 부실 우려에 따른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도 잇따르고 있다. 이날은 330억 달러 규모의 클리프워터(Cliffwater) 기업대출펀드에서 투자자들이 14%에 달하는 환매를 요청해 규제상 최대치인 7%에서 캡이 걸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창업자 스티븐 네스빗 CEO는 이날 투자자 서한에서 "2019년 이후 연환산 수익률 9.4%, 실현 손실 거의 제로"라며 펀더멘털 건전성을 강조했지만 투자자 이탈을 막지 못했다.
이에 앞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HPS 펀드도 자산의 9.3%에 달하는 환매를 5%로 제한하기 시작했고, 블랙스톤은 사모대출펀드인 BCRED(Blackstone Private Credit Fund)에서 사상 최대인 7.9% 환매를 허용하되 시니어 임원 자금으로 빈 자금을 메우는 일도 이어졌다. 아레스 매니지먼트의 마이크 아루게티 CEO는 이날 뉴욕에서 열린 RBC 캐피털마켓 컨퍼런스에서 "환매로 인한 유출을 우려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날 대부분의 기업이 약세를 지속한 가운데 AI 하드웨어 투자에 기반한 일부 기술주 상승이 두드러졌다. 엔비디아가 다음 주 GPU 기술 컨퍼런스인 GTC를 앞두고 AI 클라우드 기업 네비우스에 2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한 뒤 네비우스 주가가 16% 넘게 급등했다.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 코어위브·루멘텀·코히런트에 각 20억 달러, 오픈AI 펀딩에 30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전날엔 금액을 공개하지 않은 채 전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인 미라 무라티의 씽킹 머신 랩(Thinking Machine Lab)과도 제휴를 맺었다.
메타 플랫폼은 자체 AI 칩을 공개해 외부 GPU 조달과 별개인 자체 설계 기술과 비용 절감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날 15년 만의 최고 실적을 발표한 오라클이 9% 넘게 뛰는 등 AI 인프라 투자 모멘텀이 약해진 시장 심리를 지탱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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