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로 억울한 사람에게도, 죄를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에게도 형사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는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닐 것이다.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사건 내용이 판사가 피고인의 입장을 듣고 즉시 판결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하지 않고서야 통상 적어도 두 번은 법원에 나가게 된다. 즐거울 일 없는 법정에서, 같은 시간대에 재판을 받는 다른 사건 관계인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인적사항과 입장을 밝히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갑론을박을 듣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중대한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검사의 청구로 판사가 수사 기관이 수집한 증거들만을 검토하고 신속하게 벌금형 이하의 형을 정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 제448조 이하로 약식명령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약식명령으로 절차가 진행되면 피고인은 법원에 갈 필요가 없다. 형사재판을 받는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 셈이다.
그런데 여러 피고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약식명령은 검사 마음이라는 오해가 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검사가 청구하면 판사가 검찰, 경찰에서 수집한 증거들을 검토하여 벌금형 이하의 약식명령을 하는 것이다. 엄연히 판단은 판사가 한다. 때로는 판사가 사건을 검토하고는 피고인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겠다며 정식재판을 열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속 기고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또 피고인들이 잘 모르는 것으로, 피고인이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더라도, 약식명령의 벌금형보다 벌금 액수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약식명령으로 벌금 300만원을 받았더라도, 정식재판을 거치면 벌금이 500만원으로 증액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식재판 청구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정말 억울해서 무죄를 밝히고 싶어서, 죄는 인정하지만 약식명령의 벌금액이 너무 감당하기 어려워서, 또는 지금 당장 벌금을 낼 돈이 없어서 시간을 벌기 위해서 같이 기술적(?)인 이유도 있고, 판사 앞에서 할 말을 직접 하고 싶다는 감정적인 이유도 있다.
법원은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그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후자의 이유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청구를 받아주어야 한다. 피고인은 그저 형사소송법 제453조 제1항 규정만 지켜 약식명령을 고지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만 청구하면 된다. 법원은 그 사건을 정식재판 절차로 진행하여야 하고, 피고인도 법원에 출석하여야 한다.
그렇게 정식재판 절차까지 진행했는데 여전히 피고인에게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 판사는 약식명령의 벌금형보다 금액을 상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제457조의2 제1항으로 ‘형종’ 상향을 금지할 뿐이다. 즉, 벌금형을 징역형으로 바꿀 수는 없어도, 벌금액은 올릴 수 있다.
물론 나름의 근거를 들며 한 번 다시 판단해달라는 취지였다면 벌금이 약식명령보다 증액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이따금 벌금액이 증액되었던 사건들은, 피고인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궤변으로 일관하면서 증인을 여럿 불르게까지 하여 재판 진행에 사회경제적 비용을 소모시켰던 경우였고, 특히 드물게는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는데 든 비용까지도 부담시켰던 경우가 있었다.
그러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정식재판을 청구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이 사실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권리를 남용하는 것과 다름 없지는 않은지, 자신의 양심에 진지하게 물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하여야 한다. 괜한 아집을 부리다가 더 내게 된 벌금, 여러 차례 법원에 나가느라 들인 시간과 비용은 그 누구도 대신 부담해주지 않는다.
민사원 변호사는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현)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국선전담변호사, (현)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신길제1동 마을변호사, (현)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 (현)사단법인 동물보호단체헬프애니멀 프로보노로 참여하고 있다.
<글=법률사무소 퍼스펙티브 변호사 민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