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전쟁의 여파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 '비전 2030'을 흔들고 있다. 막대한 재정 부담과 투자 위축이 겹치면서 핵심 사업 전반이 재검토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사우디 당국자들을 인용해 비전 2030의 주요 프로젝트 대부분이 속도 조절 또는 축소 검토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이번 변화는 전쟁 여파로 사우디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결과라는 분석이다.
비전 2030은 사우디의 석유 의존 경제 구조를 탈피하고 국가 전반의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장기 전략이다. 무함마드 빈살만 주도로 2016년 발표됐으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의 선진화까지 목표로 한다.
하지만 전쟁 비용 부담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세입 감소와 추가 지출을 합친 비용은 100억달러(약 15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원유 수출은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해상 유전도 대부분 가동을 멈춘 상태다.
여기에 이란이 사우디를 향해 드론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안전한 투자처'라는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그 여파로 스포츠 경기와 자본시장 포럼 등 주요 행사가 잇따라 취소됐고 일부 오피스 빌딩도 문을 닫았다.
휴전이 이뤄지더라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걸프 지역에 위치한 사우디가 이란 강경파 정권의 영향권에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WSJ은 이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추가 국방비 지출 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비전 2030 핵심 사업들은 이미 축소 또는 중단 수순에 들어간 모습이다. 대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는 계획 조정이 진행 중이며 공사 현장에는 약 120㎞에 달하는 공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해 고급 리조트 개발 사업인 신달라도 사실상 멈춰 섰다. 2024년 10월 대규모 개장 행사를 열었지만 부실 공사 문제가 드러나면서 수억달러 규모 보수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 전직 직원은 리조트 식당에서 수만달러 규모 캐비어 23㎏이 폐기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재정 긴축 움직임도 이미 시작됐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개전 이전부터 지출과 고용을 줄였고 보유 중이던 미국 주식도 일부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자국 기업과 부유층에 국가 프로젝트 투자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비용 절감도 이어지고 있다. 공무원 해외 출장 축소와 저가 숙소 이용 지침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사우디의 야심찬 계획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이란의 전쟁으로 왕세자의 원대한 비전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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