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이름을 건다는 것: 기술인실명제, 건설 품질과 안전의 해법

신재근 기자

입력 2026-04-24 13:51  

박문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한국건설안전학회장)
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일은 동시에 자기 존재의 확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일에 이름을 건다는 것, 가치관과 전문성에 대한 자기암시이고, 삶의 에너지이다. 대학생 때 낙성대에서 차를 태워 주신 경영대 교수님이 그러셨다. “난 건축가가 부럽다. 100년이 지나도 자기 이름을 남길 수 있으니” 한때 품질경영의 대명사였던 소니의 기술혁신도 생산설비 기능인들의 자부심으로 가능했다.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했던 기술력이 지금 우리 산업의 기초가 되었다. 세계 최고의 용접 기술로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 첨탑을 완성하여 일본과의 국가대항전에서 이긴 것도 그러했다.

최근 대한민국 건설산업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붕괴 사고와 철근 누락, '순살 아파트' 논란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정부와 기업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장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품질 저하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건설에 대한 시스템적 이해의 부족과, 규제 강화와 같은 외생변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이다. 건설은 결국 사람이다. 첨단 공법과 장비는 오히려 건설 기술인 양산에 방해가 되었고,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와 기술인 노령화는 양질의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주어진 기술 인력 수급하에서 답은 작업 현장의 R&R(role & responsibility)의 명확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건설기술인 실명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건설 현장은 복잡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많은 참여 주체가 존재하며, 그 결과로 시공에 대한 책임 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역설적이게도 감독 기능을 강화한 발주 방식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시공 과정을 살펴보면, 전문건설업체 관리자의 '감독' 아래, 해당 업체 소속 작업자가 실제 시공을 하고, 이를 원청사인 종합건설업체에서 '관리'를 하고, 발주자를 대리하여 감리업체가 '감리'를 한다. 일은 며느리 혼자 하는데, 시어머니는 셋이나 된다. 이런 다층 구조의 모니터링은 원래 목적인 고품질 시공보다, 품질 문제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관행으로 귀결된다. 가족 나들이 가서 어른이 여럿일 때 미아 발생이 더 많은 이유와 같다.

기술인 실명제는 설계부터 시공, 감독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참여한 인력의 이름을 기록, 보존, 공시하는 제도이다. 자신의 이름이 공정의 결과물에 남는다는 사실은 기술자에게 강력한 심리적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내 이름을 걸고 끝까지 책임 진다"라는 직업윤리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해당 공정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고, 부실시공의 원인을 사후에 추적하기 용이해진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특정 기둥이나 벽체를 누가 시공했는지 QR코드나 BIM(빌딩 정보 모델링) 데이터로 연동할 수 있다. 확보된 데이터는 기술인의 시공 이력 관리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장인들을 선별하고, 부실을 반복하는 인력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선진국과 국내 일부 지자체에서 이미 실명제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독일은 특정 공정에 반드시 '마이스터(Meister)'가 서명하고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시공 품질을 유지한다. 미국 주요 주(州)에서는 시공 단계별 책임자의 서명이 담긴 공정 보고서가 엄격히 관리되며, 사고 발생 시 이 기록을 바탕으로 즉각적인 법적·행정적 조치가 이루어진다. 서울시는 최근 '부실공사 제로 서울'을 목표로 현장 참여 기술인의 실명을 기록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제 현장에서의 긴장감을 높이고 시공 정밀도를 향상시키는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건축물은 한 번 지어지면 오랜 기간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 된다. 그 그릇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다. 그 이유는 시공 프로세스(절차)에 주어진 불명확한 R&R이고, 기술인의 자긍심을 발현할 시스템의 부재이다. 건설기술인 실명제는 단순히 책임을 묻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대한민국 건설기술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박문서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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