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약품은 일반 소비재와 다르다. 공급 문제로 품절되면 치료 공백으로 이어져서다. 대체 품목이 있더라도 처방 변경, 조제 지연, 재고 확인, 환자 안내 등 부담이 의료 현장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약국의 규모가 작거나, 도서산간 지역일수록 공급 불안 의약품 문제는 커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의약품 공급망(유통) 취약성이 잘 드러난 사건이다. 글로벌 물류대란, 특정 국가에 편중된 원료의약품 조달 구조는 공급 불안을 심화시켰다.
과거 국내 의약품 유통은 품목 확보나 거래처 확대, 비용 절감 등 외형 성장과 효울에 기준이 있었다. 또한 다품목, 다거래처 중심의 분산형 구조로 운영되다 보니 거래 복잡성, 정보 비대칭성 등으로 의약품 품절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구조적 약점은 콜드체인 등 보관·수송 조건이 까다로운 의약품일 때 더 잘 드러난다. 지난 2022년 생물학적 제제 배송 기준 강화 이후, 온도기록 관리 부담(2~8도 사이)으로 인해 일부 도매상들은 소량 배송을 기피해 최근에도 품절사태가 이어진 바 있다. 한 의약품 배송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온도기록 관리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도매업체가 소량 배송을 꺼리거나 최소 거래금액을 설정한 게 일부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유통 선진화를 위한 유통체계 개선방안 연구(2024)에서는 국내 의약품 유통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영세성 ▲복잡한 도매상 간 거래 ▲물류비 증가 ▲정보 비대칭성을 지적했다. 개선책으로는▲공동물류센터 조성 ▲유통 구조 단순화 ▲도매업체 대형화·계열화 ▲불필요한 도매상 간 거래 제한 등이 제시됐다. 즉, 유통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정보의 투명성을 위해 심평원 의약품 종합정보포털(KPIS)의 데이터를 대한약사회 등 약국 현장 시스템과 연계해, 약사들이 도매상별 부족 의약품 보유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KPIS는 국내 유통망의 전량을 담당하는 2,000여 개 도매상의 일련번호와 공급 내역이 집계된다. 이 데이터를 사후 모니터링에 활용해 소규모 약국 균등 분배를 지원하고, 비정상적 유통 흐름을 분석해 가수요나 끼워팔기를 단속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선 약국가와 유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공 정보가 확정 재고가 아닌 ‘보유추정정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KPIS는 익일 보고라 시차가 존재하고, 병원 납품용 예약 재고나 불량 반품 물량까지 정밀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한 압계 관계자는 "실시간 재고가 아니기 때문에 보고의 실효성이 없고, 전화해서 약이 있는지 없는지 묻는 게 빠른데 왜 사이트를 이용하겠나”며 “사재기와 끼워팔기 역시 데이터 시차로 인해 실시간 적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한 국내 대형 제약사는 ‘블록형 거점도매’를 해결책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블록형 거점도매는 제약사가 전국을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선정(공개입찰 등)된 소수의 거점 도매사를 통해 의약품을 공급, 회수하는 유통방식이다. 선정되지 않은 업체는 도도매 방식으로 제품 취급이 가능하다. 다수의 도매사 분산 유통이 아닌, 권역 허브를 만드는 식이다.
블록형 거점도매는 유통 구조 단순화를 통해 거래처 확장은 지양하고, 권역별 재고 현황을 투명하게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국의 의약품 선택권 침해’라는 면에서 약사회 반발도 있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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