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부외부채 3조 달러...반도체주 뇌관되나 [마켓딥다이브]

전효성 기자

입력 2026-08-31 14:25   수정 2026-08-31 14:24

    <앵커>
    반도체주 조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적은 사상 최대치인데 주가는 맥을 못 추고 있죠.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우려에 더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숨겨둔 '천문학적인 빚'이 반도체주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증권부 전효성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숨겨둔 빚이 무려 3조 달러에 달한다고요?

    <기자>
    기업의 재무상태표 본문에는 당장 부채로 기록되지 않지만 미래의 특정 조건이 맞춰지면 언제든 빚으로 돌변할 수 있는 잠재적인 의무를 '부외부채'라고 부릅니다. 장부 바깥에 있는 숨겨진 빚이라는 뜻인데요.

    최근 주요 외신과 투자은행들이 빅테크 9개 회사의 재무제표 주석을 분석해 부외부채를 집계해 봤더니 그 규모가 3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이 기업들이 공식적으로 장부에 올려둔 빚이 6040억달러 수준인데 그보다 5배 가까이 많은 빚이 수면 아래에 숨어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빅테크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 그러니까 공식적인 빚도 빠르게 늘어나면서 회사채를 사기 위한 청약률이 기존 5.3배에서 1.6배까지 뚝 떨어졌죠. 6천억 달러 수준의 회사채도 시장에서 소화되기가 아슬아슬한데 잠재적인 빚이 더 많다보니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앵커>
    공식 부채의 5배라니 엄청난 규모인데요. 도대체 어떤 이유로 부외부채가 이렇게 쌓여있는 겁니까?

    <기자>
    시장에서는 3조 달러의 부외부채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약 1조 2000억달러 규모의 '미개시 운용리스'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규모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을 맺었지만 아직 건물이 완공되지 않거나 서버 세팅이 끝나지 않아서 실질적인 가동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아직 방을 쓰지 않았으니 장부에는 빚으로 안 잡히지만 향후 가동이 되고 나면 이 천문학적인 금액은 일제히 '진짜 빚'과 '비용'으로 인식됩니다.

    두 번째는 약 1조 9000억달러 규모의 '하드웨어 구매 약정'입니다. 엔비디아의 GPU나 SK하이닉스, 삼성전자의 HBM 등 주요 메모리와 서버 장비를 대규모로 '미리 사겠다'고 맺어둔 확정 계약들입니다.

    <앵커>
    데이터센터 공간을 빌리는 '리스' 규모가 1조2000억 달러라는 부분이 썩 와닿지 않습니다. 금액이 이렇게까지 눈덩이처럼 커진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기자>
    우리가 흔히 아는 1년이나 2년짜리 월세 계약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라클의 사례를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오라클은 주석에 26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리스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습니다. 이 돈은 당장 누구에게 빌린 현금이 아닙니다. 외부 인프라 기업이 맞춤형 데이터센터를 지어주면 오라클은 향후(15~19년)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야 하는데 미래의 월세 총합이 2600억 달러라는 뜻입니다.

    가장 무서운 점은 15~19년이라는 초장기 계약 조건입니다. 회계 기준상 데이터센터 전원이 켜지는 순간 미래 월세 총액이 장부에 단번에 '리스부채'로 꽂히게 됩니다. 중간에 AI 사업이 적자가 나거나 실패하더라도 마음대로 방을 뺄 수조차 없습니다.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고정비 족쇄'가 채워지는 셈입니다.

    <앵커>
    지금은 장부 밖에 주석으로만 숨어있는 빚더미가 언제부터 실제 장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겁니까?

    <기자>
    월가 전문가들은 부외부채가 본격적으로 빚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2027~2029년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계약해 둔 초대형 데이터센터들이 부지 조성을 거쳐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기가 이때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2027년에 오라클을 시작으로, 2028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3291억 달러, 메타의 3470억 달러 등 초대형 데이터센터들이 줄줄이 가동에 들어갑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이미 오라클의 2027년 회계연도 기준 재무를 평가할 때 이 금액을 '조정 부채'에 선제적으로 얹어서 신용도를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디스 역시 "숨겨진 빚들이 실제 장부에 올라올 때, AI 수요가 기대치를 밑돈다면 기업들은 감당하기 힘든 잉여 설비와 막대한 고정비에 짓눌릴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입니다.

    <앵커>
    결국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반도체 기업들에 미칠 파장 아닙니까? 빅테크의 숨은 빚 폭탄이 반도체 시장에는 어떤 악영향을 주게 되는 건가요?

    <기자>
    지금까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달릴 수 있었던 건 빅테크들이 맺어둔 3조 달러 빚 중에서 1조 9000억 달러에 달하는 '하드웨어 구매 약정' 덕분이었습니다. 반도체 시장이 미래의 주문 수요를 앞당겨서 실적으로 누려왔던 거죠.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이 데이터센터 고정비를 매달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AI를 통해 수조원 이상의 고정비를 덮을 만큼 확실한 수익 모델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재무구조가 악화된 빅테크들은 생존을 위해 반도체 추가 주문을 줄이거나 가격을 무자비하게 후려칠 수밖에 없죠

    다시 말해 현재 반도체 시장은 당장의 실적이 나빠서 불안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2027년부터 빅테크들이 빚에 짓눌려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하며 지갑을 닫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이 거대한 '청구서 공포'를 주가에 선반영하며 미리 매를 맞고 있는 단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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