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3조 달러' 실체...반도체株에 무슨 일이 [B급기자의 B급리포트]

전효성 기자

입력 2026-08-31 19:30  

수면 아래 '3조 달러' 실체...반도체株에 무슨 일이 [B급기자의 B급리포트]

장부에 없는 빚 '부외부채' 3조 1000억 달러 빅테크 회사채 급증 이어 부외부채 압박 심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시원하게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100조원에 달하는 주주환원 정책도 큰 효과를 못 거두는 분위기죠. 피크아웃 논란에 더해 이번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숨겨둔 '잠재적 빚'이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는 분위기입니다.

● 공식 빚의 4배…장부 밖에 숨겨둔 3조달러의 실체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에서 글로벌 빅테크 9개 기업의 재무제표 주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장부에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은 빚인 '부외부채' 규모가 3조 1000억 달러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오늘 환율로 427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죠.

이들 기업이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 등 장부에 기록해 둔 부채 총액이 6040억 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공식적인 빚의 5배에 달하는 부외부채가 수면 아래 숨어있는 셈입니다. 부외부채란 지금 당장은 빚으로 잡히지 않지만 미래의 특정 조건이 맞춰지는 순간 갚아야 할 부채로 바뀌는 잠재적 의무를 뜻합니다.

3조 1000억 달러의 부외부채는 크게 두 항목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AI 데이터센터를 빌려 쓰기로 계약한 1조 2000억 달러 규모의 '미개시 운용리스'입니다. 아직 시설이 완공되지 않아 지금은 빚으로 잡히지 않지만 데이터센터가 가동되는 순간 확정된 부채로 장부에 올라옵니다.

두 번째는 엔비디아의 GPU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를 미리 사겠다고 약속해 둔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하드웨어 구매 약정입니다. 결과적으로 빅테크 기업들은 수천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빚내서 투자'하는 단계에 와 있는 거죠.

● 19년짜리 계약, 해지할 수 없는 고정비 족쇄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 규모가 1조 2000억달러까지 불어난 이유는 계약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입니다. 맞춤형으로 짓는 AI 데이터센터는 15~19년에 달하는 초장기 계약으로 체결됩니다.

오라클이 공시한 2600억 달러 규모의 '미개시 리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금액은 당장 빌린 돈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가동 이후 매달 지불해야 하는 미래 월세의 총합입니다.

회계 기준에 따라 데이터센터 가동이 시작되는 날 향후의 임대료 총액이 회사의 공식 빚으로 잡히게 됩니다. 중간에 AI 사업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계약을 마음대로 해지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고정비 부담을 안게 됩니다.

● 내년부터 장부 안으로…반도체 수요 절벽 우려

숨겨진 빚더미는 데이터센터가 완공되는 2027~2029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빅테크 장부에 반영될 예정입니다.

2027년 오라클(2600억 달러)을 시작으로 2028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3291억 달러)와 메타(3470억 달러)의 초대형 데이터센터가 차례로 가동에 들어갑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는 오라클을 평가할 때 숨은 빚을 공식 부채에 미리 포함시켜 신용도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무디스도 "숨은 빚들이 실제 장부에 올라올 때 AI 수요가 기대치를 밑돈다면 기업들은 감당하기 힘든 고정비에 짓눌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국내 반도체주를 압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누리는 호실적은 빅테크와 맺어둔 대규모 구매 약정 덕분입니다. 미래 수요를 미리 끌어다 쓴 측면도 있죠. 만약 빅테크들이 AI인로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면 막대한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해 반도체 추가 주문을 줄이거나 가격을 강하게 압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국내 주식은 어떻게든 떨어질 이유를 기가 막히게 찾아서 떨어진다고들 하죠. 지금까지 반도체 주가를 힘차게 끌어올렸던 빅테크의 막대한 하드웨어 투자 약정 역시, 시장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이제는 정반대로 주가를 짓누르는 거대한 하락의 핑곗거리로 둔갑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당장 숨겨진 빚들이 터져서 시장이 망가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바다 건너 월가에서부터 이미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 조금씩 울리고 있는 만큼, 화려한 실적 이면에 숨어있는 이 서늘한 청구서의 존재를 투자자로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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