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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100조라며"…현대차 개미들이 주목하는 美 상장

이지효 기자

입력 2026-10-17 21:20  



미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다음 달 미국 나스닥에 입성한다. 서구권 증시에 휴머노이드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상장하는 건 사실상 처음이다.

현대자동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100조원 몸값'이 현실적인지를 가늠할 첫 잣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스팩 합병으로 우회상장…11월 나스닥행

18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등에 따르면 어질리티와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 '처칠 캐피털 XI'가 제출한 합병 증권신고서(S-4)가 현지시간 13일 효력을 얻었다.

처칠 캐피털 XI는 다음 달 2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합병안을 표결한다. 합병안이 통과되면 11월 중 합병 회사는 'AGLT'라는 종목명으로 나스닥에서 거래된다.

어질리티는 일반 기업공개(IPO) 대신 이미 상장된 스팩과 합병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반 IPO는 기관 수요예측으로 공모가를 정한다. 반면 스팩 합병은 스팩과 대상 기업이 협상으로 몸값을 정하기 때문에 당장의 실적보다 미래 전망이 크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합병 전 기업가치는 25억달러, 3조원대로 책정됐다. 신규 조달 규모는 6억2,000만달러 이상이다.

스팩 신탁 계좌 자금 약 4억2,400만달러에, 대만 폭스콘이 주도하고 기존·신규 기관 투자자가 참여한 주당 10달러의 투자 약정 약 2억달러가 더해진다.

다만 신탁 자금은 스팩 투자자의 환매가 없다는 가정의 금액이다. 하나증권은 상장 후 시가총액을 약 33억6,000만달러로 추산했다.

2015년 미국 오리건주립대 로봇 연구소에서 분사한 어질리티는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 '디지트'를 만든다.

도요타 캐나다 공장, 미국 물류기업 GXO, 독일 자동차 부품사 셰플러, 중남미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메르카도리브레 등 고객사의 9개 시설에 로봇을 공급해 운영 중이다.

아마존, 엔비디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 등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몸값, 매출의 1,400배…역마진에 자금난

문제는 실적이다. 합병 증권신고서의 재무제표를 보면 어질리티의 지난해 매출은 178만1,967달러로, 우리 돈 20억원대에 그쳤다.

영업손실은 1억4,017만달러로 매출의 80배에 가깝다. 2024년 매출 6,972만달러와 비교해도 크게 확대됐다.

수익 구조도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해 매출원가는 447만달러로 매출의 2.5배에 달했다. 1달러어치를 팔 때마다 2.5달러를 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상태다.

회사가 핵심 수익 모델로 제시한 '로봇 구독 서비스(RaaS)' 매출도 미미하다.

로봇을 빌려주고 매달 사용료를 받는 방식인데, 지난해 매출의 87%는 로봇을 직접 판매해 번 돈이었다.

거래 상대별로는 매출의 63.5%인 113만달러가 자사에 투자한 주주 회사 등 특수 관계자에서 나왔다. 외부 수요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몸값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뚜렷하다. 합병 전 기업가치 25억달러는 지난해 매출의 약 1,400배다.

지난 8월 중국 상하이 증시에 상장한 유니트리는 공모가 기준으로 매출의 36배 수준에서 몸값이 매겨졌다.

흑자를 내는 유니트리보다 적자인 어질리티가 40배 가까이 비싸게 평가받은 셈이다. 유니트리조차 상장 첫날 460% 폭등한 뒤 두 달 만에 주가가 고점 대비 60% 넘게 빠졌다.

자금 사정도 빠듯하다. 회사는 재무제표 주석에서 현재 보유 현금으로는 향후 최소 1년간의 운영 자금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5조·30조·146조'

어질리티 상장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있다.

미국 증시에 휴머노이드 전문 상장사가 없었던 만큼, 그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몸값은 비교 대상 없이 추정만 무성했다. 현재 거론되는 몸값은 근거에 따라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증권가 추정치다. KB증권은 지난 1월 2035년 보스턴다이내믹스 매출을 404조원으로 전망하고, 이를 토대로 기업가치를 128조원으로 산정했다.

같은 달 한화투자증권이 평가한 기아 보유 지분가치를 회사 전체로 환산하면 약 146조원이다. 모두 아틀라스 양산형 공개 직후, 즉 상장 기대감이 가장 높던 시기에 나왔다.

둘째는 그룹 내부 거래다. 현대글로비스의 지난해 추가 출자 규모와 지분율 변화를 역산하면 기업가치는 약 30조원 수준이다.

셋째는 외부 거래 가격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지분 9.65%를 약 3억2,500만달러에 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회사 전체 가치로 환산하면 5조원 안팎으로, 어질리티의 상장 후 시가총액과 비슷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매출 대비 배수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난해 매출은 1,501억원이다. 증권가 추정치 128조~146조원을 이 매출로 나누면 약 850~970배가 된다.

100조원이라는 숫자는 크지만, 매출 대비로는 어질리티의 1,400배보다 오히려 낮다.

어질리티가 미국 시장에서 어떤 배수를 인정받느냐에 따라 보스턴다이내믹스 추정치의 설득력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상장 시계 늦춰져…"결국 실적이 가른다"

다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적자 규모는 어질리티보다 크다. 지난해 순손실은 5,284억원으로, 어질리티 순손실(1억3,809만달러)의 두 배를 웃돈다.

2021년부터 5년간 누적 순손실은 1조7,558억원이다. 자사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도 아직 공장에 대규모로 투입되지 못했다.

상장 시계도 늦춰지고 있다.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은 최근 로이터통신에 2027년 상장에 대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은 대량의 운영 데이터를 확보해야 외부 판매가 가능할 것이라며 상장 시점을 2029~2030년으로 전망했다.

현대차그룹은 상장 시점이나 목표 기업가치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대신 2028년 미국 조지아 공장에 아틀라스를 투입하는 등 양산 검증을 우선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질리티 주가는 보스턴다이내믹스 가치를 가늠하는 사실상 유일한 시장 지표가 될 전망이다.

강세를 보이면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 지분 보유 계열사에 로봇 기대감이 되살아날 수 있다. 반대의 경우 100조원 몸값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 있다는 예상이다.

양사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그룹 공장이라는 확실한 내부 수요처가 있고,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 체제도 준비 중이다.

한편 보스턴다이내믹스 이외에도 두산로보틱스와 로보티즈, 레인보우로보틱스 등은 고평가 부담과 수익성 요구 속에 일제히 약세다.

로봇 섹터가 시연 영상과 테마 중심에서 실적 검증 국면으로 넘어간 만큼, 어질리티가 상장 이후 몸값을 실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증명하느냐가 국내외 로봇주 흐름을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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