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8천만 이란인 모두 테러리스트냐"…美입국금지에 '분노'

입력 2017-02-01 20:23   수정 2017-02-01 21:06

[르포] "8천만 이란인 모두 테러리스트냐"…美입국금지에 '분노'

"美 이민 가려고 직장도 그만뒀는데"…테러 위험국 선정에 '황당'

반미감정·핵합의 파기 우려 동시에 커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테헤란에서 무역업을 하는 미르사이디(41)씨는 2주전 미국에 이민하려고 터키 주재 미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았다.

3월 1일 테헤란을 떠나 두바이를 거쳐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도 예매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항공권을 예매한 여행사에서 뜻밖의 전화가 왔다.

"미국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미국에 입국할 수 없으니 비행기 표를 취소하든지, 날짜를 뒤로 미루라"는 것이었다.

미르사이디 씨는 "이미 미국 비자를 받은 사람은 괜찮지 않으냐"고 물었으나 "소급 적용된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미국에 이민하려고 회사도 넘기고, 집도 팔고, 재산도 모두 정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낙담했다.

함께 뉴욕에 가려던 아내는 '그린 카드'(미 영주권자)가 있어 예정대로 미국으로 먼저 떠날 예정이라 부부가 생이별할 처지다.

지난달 30일까지 미국과 이란 이중국적자나 '그린 카드'(미 영주권자)를 가진 이란인도 미국에 입국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1일 현재 입국할 수 있는 상태다.

미르사이디 씨는 "미국 정부가 테러를 막겠다는 뜻은 반대하지 않지만, 이란인 8천만 명이 모두 테러리스트로 여기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트럼프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테헤란 중부에서 여행사 매니저로 일하는 피리 씨도 최근 며칠 동안 고객의 항의에 시달렸다.

그는 "미국행 표를 예약한 손님들도 여행사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무척 분노했다"며 "처음에는 항공권 취소에 따른 수수료를 고객에게 물리려 했지만 항의가 심해지자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피리 씨는 "정작 테러에 연관된 나라들은 입국 금지 대상에서 제외되고 이란을 콕 집어 테러 위험국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트럼프 정부의 이런 행태가 바로 테러"라고 비난했다.

핵협상 타결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모처럼 해빙 분위기가 감돌다가 순식간에 냉각되면서 제재가 다시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학생 사예(23) 씨는 "트럼프 정부의 반이란 정책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미국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제재를 다시 부과하면 중동 정세가 다시 불안해 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테헤란 북부 타즈리시 시장에서 견과류를 파는 모하마드(60) 씨는 "미국이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냐"며 "미국이 제재를 다시 시작할 때를 대비해 유럽과 관계를 밀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이란 외무부가 보복 조치로 미국 국적자에 대한 이란 비자 발급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도 국제 스포츠경기 참가, 취재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미국인의 이란 입국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테헤란 남부에서 카펫 유통을 하는 아스가리연(55) 씨는 "카펫이나 사프란과 같은 이란 특산품의 주요 수출처가 미국인 반면 미국은 이란에 경제적으로 아쉬울 게 없는 게 사실"이라며 "이란 정부는 미국 정부에 어떻게 보복 조치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 이란에선 이번 주가 '10일의 새벽' 주간이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파리에서 귀국해 이슬람혁명의 승리를 선언한 기념일 열흘 전부터 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는 여러 행사가 열린다.

외세를 배격하고 신정일치의 공화국을 세운 이란 이슬람혁명은 이란과 미국의 국교가 단절되고 상대의 적성국이 된 직접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필 미국 정부의 반(反)이민 행정명령과 겹쳐 이란 내 반미 감정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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