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서 집단 총격살해된 콥트교도는 소수 기독교 분파 교인

입력 2017-05-27 00:04  

이집트서 집단 총격살해된 콥트교도는 소수 기독교 분파 교인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26일(현지시간) 이집트 남부 민야에서 버스를 타고 수도원으로 향하다 무장 괴한에 집단으로 총격 살해된 이들은 이집트의 대표적 소수 종파인 콥트 기독교 교인들과 그 가족들이다.

이집트 전체 인구 9천200만명 가운데 90% 정도는 이슬람 수니파로, 콥트교도들이 인구의 10%가량을 차지한다.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콥트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 때 이집트인을 일컫는데 주로 쓰인 그리스어 '콥트'에서 파생됐다.

콥트교는 기원후 1세기 중엽부터 이집트에서 포교가 이뤄진 그리스정교회 또는 동방정교회의 일파로 알려져 있다.

민족적으로 고대 이집트인의 직계로 전해지는 콥트교도는 7세기에 이집트가 이슬람 세력에 정복당한 이후 지금까지 독자적인 신앙체계를 유지해 왔다.

콥트교도 대부분은 현재 수도 카이로와 남부 지역에서 살고 있다. 온건 성향의 이슬람교도들은 콥트교도를 이집트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집트 인구의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상황에서 콥트교도는 종종 박해의 대상이었고, 콥트교회는 수시로 극단주의 단체의 공격을 받았다.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기독교도들은 대표적인 다신교도로 서방과 세속주의 성향의 이집트 정부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콥트교도들 역시 오랜 기간 이집트 정부로부터 정치 참여와 공직 진출, 교육 기회 등에서도 공공연히 차별받았다고 불만을 제기해 왔다.

콥트교도들은 종교의 자유와 헌법이 보장하는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지만, 차별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교회를 신축하는데도 엄청난 제약이 따른다.

이집트에서 이슬람교도와 콥트교도 간 분열은 영국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이집트공화국을 세운 1952년 이집트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말 압델 나세르 당시 대통령의 이슬람을 기반으로 반(反) 서방, 범아랍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많은 콥트교도가 이집트를 빠져나갔다.

이후에도 이집트 군부 정권은 '2등 국민' 대우에 항의하는 콥트교도들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이들이 시위에 나설 때면 강경한 진압으로 사상자를 내곤 했다.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이집트지부는 동북부 시나이반도에서 콥트교도 주민을 위협하는 방식 등으로 강제로 내쫓기도 했다.

게다가 콥트교도는 2013년 이슬람주의자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강제로 몰아낸 군부의 수장이었던 현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일부 이슬람교도들의 미움을 샀다.

IS 이집트지부는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에 축출된 후 시나이반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군인과 경찰, 민간인 등 수백 명을 살해했다.




gogo21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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