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미국 노벨상 1호' 루스벨트 대통령 총 맞고도 90분 연설

입력 2017-07-07 08:00  

[숨은 역사 2cm] '미국 노벨상 1호' 루스벨트 대통령 총 맞고도 90분 연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으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서 심한 난기류를 만났을 때 강한 담력을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기내 기자석 앞에 서서 한 손에 마이크를 잡고 간담회를 하다가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로 몸이 휘청했다.

이때 "대통령 님, 규정상 앉으셔야 합니다. 청와대 기자단 여러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라며 경호실장이 착석을 권유하자 문 대통령은 조금만 더 하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본인 구상을 언론에 설명하고 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기체가 1분 이상 흔들리는 상황에서 매우 놀란 청와대 참모들은 내색을 못 하다가 간담회 종료 후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 시절 강제 징집돼 특전사로 차출된 문 대통령은 혹독한 고공침투 훈련을 받느라 수송기의 거친 비행에 익숙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숱한 위기 상황에서 고독한 결정을 해야 하는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담력은 균형감각이나 경륜 못지않게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담력만 따진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돋보인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경축사를 낭독하다가 육영수 여사가 총격을 받아 쓰러진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단상으로 총알이 잇따라 날아오자 연설대 뒤로 잠시 몸을 낮췄다가 범인 문세광이 체포된 뒤 "하던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라며 남은 경축사를 읽었다.

이를 계기로 박 전 대통령은 비범하다는 호평을 받았으나 경호원 대응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행사장에 다른 저격범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연설을 만류하고서 서둘러 대피시키는 게 경호 원칙이기 때문이다.

문세광 저격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박종규 대신 경호실장 자리에 오른 차지철은 겉으로만 강했다.

무술 합계 13단인 차지철은 특전사 창설 요원으로 참가하고, 1960년 미국 육군 특수전 교육생으로서 '죽음의 지옥훈련'까지 통과했지만, 위기 순간에는 한없이 초라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권총을 발사하자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경호해야 할 대상인 대통령을 그대로 둔 채 화장실로 서둘러 피신한 것이다.

김재규 부장이 고장 난 총을 바꾸려고 방 밖으로 나갈 때 덮쳤더라면 희생을 최소화할 수도 있었으나 처음부터 숨는 바람에 결국 본인도 사살된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생즉사 사즉생'의 의미를 확인해준 사례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에 겁 많은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 등이 100일 이상 촛불시위를 이어갈 때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도심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시위대가 청와대 인근까지 접근하자 청와대 뒷산으로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는 고백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에서 "시위대 함성과 함께,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도 들려 왔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을 보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고 말했다.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 요구를 꼼꼼하게 헤아리지 못했다. 자신보다 자녀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면서 뼈저리게 반성한다고도 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위세에 눌린 나머지 자책이나 뼈저린 반성 등 표현을 써가며 머리를 숙인 것이다.

하지만 2015년 출간한 자서전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불리해진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라며 기존 태도를 바꿔버린다.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년)는 심한 총상을 입고도 무려 90분이나 연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1901년 부통령 재직 중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피살로 백악관에 입성한 루스벨트는 1904년 대선에 출마해 연임에 성공한다.

임기 종료 후에는 정계에서 은퇴하는 듯했으나 1912년 대선에 다시 도전했다가 총격을 당한다.

슈랭크라는 독일계 청년은 "매킨리 전 대통령이 꿈에 나타나 '루스벨트가 날 죽였다. 억울한 죽음을 복수해달라'"고 부탁했다며 범행을 결심한다.

며칠 후 루스벨트가 밀워키의 한 호텔에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유세 차량에 올라 지지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드는 순간에 슈랭크는 방아쇠를 당긴다.

가슴에 총알이 박힌 루스벨트는 강한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렸고 가슴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혼비백산한 수행 비서와 경호원들이 우왕좌왕했으나 정작 총 맞은 루스벨트는 차분했다.

심지어 병원 치료도 거부한 채 유권자와 약속한 연설을 해야 한다며 유세장으로 이동한다.

연단에 올라 양복 조끼 주머니에서 꺼내 든 연설 원고는 총알 관통으로 구멍이 뚫렸고 안경집에도 총탄 흔적이 보였다.

그런데도 루스벨트는 미소 띤 얼굴로 "겨우 총알 하나로 날 죽이려 했다니. 나는 죽지 않는다. 오늘 죽기를 각오하고 이 연설을 끝낼 것이다"라며 손을 흔들었다.

청중은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에 감동한 듯 우르르 일어나 힘찬 박수를 보낸다.

루스벨트는 핏빛으로 변한 연설 원고를 꺼내 들고 90분간 힘겹게 연설하고서 단상에서 내려온다.






그제야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긴 루스벨트는 검사 결과 총알이 폐에서 불과 1mm 떨어진 곳에 박힌 사실을 확인한다.

반으로 접은 장문의 연설 원고를 뚫으면서 힘이 약해진 총알이 안경집에 맞으면서 굴절된 덕에 허파를 비켜날 수 있었다.

고도 근시 때문에 늘 갖고 다닌 안경집과 원고 뭉치가 방탄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루스벨트는 입원 8일 만에 병원을 떠났지만, 총알을 빼내지 못해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다.

루스벨트는 미국 중서부 러시모어 산 암벽에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함께 '큰 바위 얼굴'로 새겨질 정도로 미국에서 인기가 높다.

미국 최초 국립공원 조성, 대기업 독과점 견제, 악명 높은 부패 퇴치, 과격 노조 엄단 등으로 찬사를 받았다.

1905년 러일전쟁을 끝내는 포츠머스 평화조약을 중재한 공로로 미국인 1호 노벨평화상을 타기도 한다.

한반도는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일본이 조선에서 정치·군사·경제적 우월권을 갖고서 지도·보호·감독 역할을 하는 것을 러시아가 인정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독립전쟁 승리 후 미국 장래를 설계한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년)은 용감한 수준을 넘어서 무모했다.

1789년 초대 재무장관에 발탁된 해밀턴은 연방은행·증권거래소·독립 조폐국 창설과 국공채 발행 등 공로로 미국 최고 재무장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파산 직전의 나라 곳간을 채우려고 연방정부에 세금 징수권을 부여하는 법률안에 주 정부들이 동의하는 조건으로 연방정부 수도를 뉴욕에서 워싱턴DC로 옮기는 정치력도 발휘했다.

높은 인기 덕에 미국 10달러 지폐에 해밀턴 초상이 그려진다.

달러 초상 가운데 대통령이 아닌 인물은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과 해밀턴뿐이다.

떠돌이 장사꾼 아들로 태어나 온갖 난관을 정면 돌파한 해밀턴이지만 마지막 삶은 너무 허무하게 끝난다.

1804년 애런 버 부통령과 갈등 끝에 죽음을 건 결투를 벌인 게 화근이었다.

명사수로 알려진 버 부통령이 싸움을 걸어왔을 때 피할 수도 있었으나 비겁하다는 말을 듣기 싫었는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수락한다.

뉴욕 동부를 흐르는 허드슨 강 인근 지역에 권총을 들고 나타난 두 사람은 안개 자욱한 아침에 1:1 대결을 벌인다.






이곳은 공교롭게도 3년 전 해밀턴 장남 필립이 결투로 목숨을 잃은 장소이기도 했다.

양측에서 거의 동시에 총알을 발사했지만, 해밀턴만 희생된다.

엉덩이 깊숙한 곳에 총알이 박혀 쓰러진 해밀턴은 과다출혈로 숨진다. 그때 나이 49세였다.

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도 위기 상황에서 여유를 잃지 않았다.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힐튼호텔 연설을 마치고 대통령 전용차에 오를 당시 불과 3m 떨어진 곳에서 총격을 받았다.

수술 직전에 부인 낸시에게 "내가 오늘 고개 숙이는 것을 잊었구려"라고 농담했다.

수술실 의사들에게는 "당신들이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지도자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 속내를 감추기도 한다.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를 속물 장사꾼이라고 혹평했던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가장 존경한 앤드루 그로브가 그런 인물이다.

타임지가 1997년 '올해 인물'로 선정한 인텔 CEO 그로브는 자수성가한 헝가리 출신 사업가다.

1987 CEO를 맡아서 1998년 은퇴할 때까지 회사 가치를 50배 이상 높여 세계 7위 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이다.

그런 그로브가 어느 날 기자로부터 "많은 위기를 겪으면서 어떻게 늘 당당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의외 답변을 한다.

"위기 때마다 직원 급여가 걱정돼 오줌을 쌀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CEO가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면 직원이 두세 배는 더 흔들리기에 두려움이 없는 척 했다"

리더에게 역량보다 자신감이 더 필요하다고 믿은 그로브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난기류에 의연했던 문 대통령의 강인함은 북한 군사 도발에 대한 대응에서도 확인됐다.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한·미 미사일 연합 무력시위로 맞대응하도록 지시했다.

정치 지도자에게 강한 배짱과 담력은 큰 자산이지만 대담함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해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인 국민마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유교 경전인 서경은 백성을 섬기는 통치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성은 도가 있는 천자를 떠받들지만 무도하면 천자 자리에서 몰아낸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had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