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소부터 최첨단기술까지…충무로 인쇄골목 '책거리 투어'

입력 2018-11-08 08:00  

주자소부터 최첨단기술까지…충무로 인쇄골목 '책거리 투어'
서울시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 '인쇄골목의 부활'
1일 첫 투어에 20여명 참가…인쇄산업의 어제와 오늘 체험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걸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게 돼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실제 인쇄공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볼 수 있다고 해서 참여했습니다."(대학생 이희은(24) 씨)
서울 시내 한복판에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골목이 있다. 그 주변을 종종 지나다니는 사람도 웬만해서는 그 안으로는 들어가 볼 일이 없는 '특수한 골목'이다. 바로 인쇄에 특화된 소규모 점포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충무로 인쇄골목이다.
특정 업체의 주소를 받아들어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고, 한번 길을 잃으면 헤매기 일쑤인 이곳을 탐방하는 '인쇄골목 책거리 투어'가 이달 1일 첫선을 보였다. 서울시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인 '충무로 인쇄골목의 부활' 일환으로 기획됐다.




"여기가 조선 시대 활자를 만들던 주자소 터입니다. 길을 지나가면서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표석이 있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죠."
투어는 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 남산스퀘어빌딩 앞 화단에서 시작했다. 화단에 파묻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주자소'가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는 표석이 놓여 있다.
서울시가 인쇄골목 업체와 창작자를 매개하기 위해 운영하는 '지붕없는 인쇄소'의 이란 소장이 가이드를 맡은 투어는 1시간여에 걸쳐 인쇄골목 내 7곳 정도의 포인트를 돌아보는 여정이다.
197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최고 호황을 누렸던 이 인쇄골목에는 현재 인쇄업체 5천500여개가 모여있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펼쳐져 있어 1㎞ 정도 되는 투어에서 중간에 일행을 놓치면 길을 찾기 어려워 주의해야 한다.
본디자인 → 충무로 POD → 무림갤러리 → 마른내4길 → 마른내6길 → 인현시장 → 지붕없는 인쇄소로 이어지는 투어에서는 최첨단 인쇄기술부터 30~40년째 그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쇄업체 삶의 현장, 일제 적산가옥과 아직도 성업 중인 '배달커피' 등을 볼 수 있다.



"놀이공원이나 사우나, 찜질방 등에서 요즘에는 손목에 두르는 입장권을 주죠? 이 입장권에는 QR코드가 있어요. 코드는 20만개가 다 다르죠. 그런 입장권을 20만개 찍어내는 데 4시간 정도 걸려요. 디지털인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죠. 또 옛날에는 명함 한 통 인쇄하려면 3~4일 걸렸는데 요즘에는 3~4분이면 나와요. 흑백 책도 2권을 5분이면 완성할 수 있고요."
충무로 POD(주문형 인쇄)업체 대표가 이렇게 말하면서 시연도 펼치자 참가자들은 빛의 속도로 완성되는 명함과 책을 보며 신기해했다.
또 레터프레스(동판에 잉크를 발라 눌러서 찍는 기법) 업체 본디자인에서는 레이저 커팅 시연을 보며 이런저런 질문과 함께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인쇄 쪽 일을 한다는 박용환(42) 씨는 "투어 홍보자료를 보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을 내서 왔다"며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래픽디자인 전문회사 해인기획 류명식 대표도 투어에 참여했다. 홍익대 교수를 지낸 류 대표는 "서울시에서 도심재생사업으로 인쇄골목 부활 프로그램을 하는데 그 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요즘은 인쇄가 산업용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 참여하기 좋은 미디어가 됐다"며 "학생들이 이렇게 현장에 나와서 보면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참가자 상당수는 서울시의 '다시·세운 인쇄기술학교' 학생들이다. 디자인 강의와 레터프레스 강의 수강생들로, 인쇄골목 투어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했다.
서울시의 '충무로 인쇄골목 부활' 사업은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를 현장 중심의 인쇄기술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청년들이 찾아오는 인쇄·디자인 혁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목표다.



"다들 분주히 일하셔서 처음에는 가게 안을 들여다보기가 죄송스러웠는데 이렇게 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 신기하네요. 제가 디자인 기획·홍보 쪽에서 일하는데, 공정을 알고 인쇄를 맡기는 거랑 모르고 맡기는 거랑 달라서 오늘 나왔는데 오기 잘했네요. 그동안은 주문 한 대로 인쇄가 잘 안 돼도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왜 잘못됐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익명을 요구한 A씨)
투어는 진양상가 302호에 자리한 지붕 없는 인쇄소에서 끝나고,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30여분에 걸쳐 직접 '아다나 레터프레스'로 인쇄를 하는 체험을 했다.
중구에 50년째 살고 있다는 김민정(53) 씨는 "중구에 살면서도 인쇄골목은 들어올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니 느낌이 새롭다"며 "주자소 터에서 시작하는 우리동네 인쇄 역사 탐방길이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첫 투어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토대로 향후 책거리 투어를 정례화한다는 방침이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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