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재벌 책임경영 회피·거수기 사외이사 백년하청인가

입력 2020-12-09 16:51  

[연합시론] 재벌 책임경영 회피·거수기 사외이사 백년하청인가

(서울=연합뉴스) 재벌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총수 일가의 책임 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대는 커지고 있으나 그 실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발표한 '2020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51곳의 계열사 1천905개 사 가운데 총수 일가가 한 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6.4%로 작년의 17.8%에 비해 후퇴했다. 지난 5년 연속 공정위 분석대상에 오른 21개 기업집단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 비율은 13.3%로 작년(14.3%)은 물론 2015년(18.4%)에 비해 크게 뒷걸음질했다. 조사 기간인 작년 5월부터 1년간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집단은 삼성,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효성, 네이버 등 20개였고 이 가운데 절반은 총수는 물론 2·3세조차 단 한 곳의 계열사 이사도 맡지 않았다. 등기임원이 되면 지게 될 법적 책임을 피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인사권을 포함해 사실상 계열사의 경영 전권을 행사하고 이익은 챙기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고질적 행태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는 재벌 개혁이 여전히 요원함을 보여준다.

총수의 전횡이나 방만한 투자, 내부거래 등의 사익추구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는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96.5%였으나 상정된 안건의 원안 가결률은 99.5%에 달했다. 안건이 오르면 대부분 그대로 통과됐다. 총수 가족 간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가능성이 큰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 692건 가운데 제동이 걸린 건 달랑 1건이었다는 통계는 국내 기업집단의 이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사회가 거수기라고 보면 대규모 내부거래 대부분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지고, 안건에 수의계약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가 80%에 육박했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특히 19개 기업집단의 35개 회사는 계열사 퇴직 임원 출신 4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운 18명은 총수 일가 지분이 20∼30%인 사익편취 규제대상 기업이나 사각지대 회사 소속이어서 총수 일가의 사익 챙기기에 이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대표적 기업집단은 창업 1, 2세대 총수 시대를 마감하고 3세,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젊은 총수들은 하나 같이 기업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에서 의미 있는 혁신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재벌 기업 내에서 자정을 위한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입법 등을 통한 외부 압력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이 재계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최대 주주 의결권 제한, 다중대표소송제,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등을 담은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의 입법을 서두른 것도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경영 강화, 소비자 권익 보호 등의 명분이 서고 여론도 호응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일 것이다. 소수의 지분으로 전횡하는 황제 경영이나 내부거래 등을 통한 불법 승계,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막후 경영 등이 설 땅은 이제 없다. 법의 강제 이전에 지속 가능하고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재벌 스스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지배구조 개혁에 자발적,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