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노예역사' 청산 중인 미국…인종차별 해소될까

입력 2020-12-13 07:07  

[특파원시선] '노예역사' 청산 중인 미국…인종차별 해소될까
버지니아 폴스처치 교육위, 제퍼슨초교·메이슨고교 개명 결정
의회, 남부연합 이름 기지 재명명…바이든, 흑인 등 유색인종 발탁 가속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미국 버지니아주 폴스처치 교육위원회는 지난 10월 지역사회 구성원과 학생, 교직원 등 약 3천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토머스 제퍼슨과 조지 메이슨 이름이 붙은 학교 명칭을 바꾸는 문제였다.
제퍼슨은 미국의 3대 대통령, 메이슨은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미국 독립선언서 초안을 주도한 제퍼슨은 미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메이슨 역시 버지니아 권리장전의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흑인 노예를 부린 지도자라는 멍에를 쓰고 있다.
학교 명칭 변경 추진은 백인 경찰에게 목숨을 잃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돼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종 평등 운동' 여파였다.
설문조사 결과 56%가 명칭 변경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일부는 노예 소유주로서 메이슨과 제퍼슨의 역사를 지적했고, 일부 학생은 그들의 이름을 딴 학교에 가는 게 불편하고 소외감이 들게 한다고 했다.
폴스처치 학교위는 결국 지난 8일 토머스 제퍼슨 초등학교와 조지 메이슨 고등학교의 명칭을 바꾸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전했다.
"당시엔 그게 일반적이었기에 메이슨과 제퍼슨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해서 명칭을 바꿔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교육위원회 위원장 그레그 앤더슨은 성명에서 "많은 학생, 학부모, 직원, 지역사회 구성원이 제기한 견해와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다양한 견해를 반영하는 명칭 선정 절차를 시작하는 데 있어 여러분의 견해를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모든 학생과 직원, 지역사회 구성원이 안전하고 지지를 받고 영감을 얻는다고 느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인종차별적 사건과 이로 인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 홍역을 치른 미국 사회가 과거 흔적을 조용히 지워나가고 있다.



11·3 대선 결과를 두고도 진통을 겪고 있는 미국 정치권에서는 최근 이와 관련한 두 가지 흐름이 눈에 띈다.
미 하원과 상원은 지난 8일과 11일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압도적 찬성률로 각각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과거 노예제를 옹호하며 미 남부지역 11개 주가 결성한 '남부연합'의 장군 이름을 딴 미군기지와 군사시설 명칭을 재명명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에도 공화당이 찬성한 것이다.
또 하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인선이다. 거의 백인 일색이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주요 직위에 포진시키고 있다.
4성 장군 출신의 흑인인 로이드 오스틴 전 중부사령관을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에 지명했고, 흑인 여성인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국내 정책 현안 최고 조정자인 국내정책위원회(DPC) 위원장으로 내정했다.
흑인 여성 외교관 출신인 린다 토머스-그린필드를 유엔주재 대사에, 역시 흑인 여성인 마르시아 퍼지 하원의원을 주택·도시개발장관에 각각 앉혔다. 국토안보부 장관에는 라틴계인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전 국토안보부 부장관이 낙점됐다.
물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은 자메이카인 부친과 인도계 모친을 뒀다.
바이든 당선인의 적지 않은 유색인종, 특히 흑인 인선 배경에는 다양성 추구라는 공약도 있지만 흑인 사회의 요구도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내 영향력을 지닌 1천 명 이상의 흑인 여성은 지난 7일 인수위에 흑인 여성을 내각에 앉히라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고 더힐이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흑인 여성과 흑인 미국인이 바이든 당선의 핵심이었듯이 우리는 차기 행정부의 성공과 비전 구현의 열쇠"라며 "우리 공동체는 그런 우리의 중요성을 인정해 주요 직위에 반영되는 것을 봐야 한다"고 밝혔다.
CNN은 "바이든을 지지했던 흑인 여성들이 보답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흑인 여성의 90%가 바이든에게 표를 던졌다.
특히 노예 역사 청산에 힘을 보태고 있는 의회의 오스틴 인준 여부에 시선이 모인다. 은퇴 4년밖에 안 된 그에게 퇴역 후 7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에 오를 수 있다는 법 조항 적용을 면제해 주느냐의 문제다.
민주당에서조차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있지만, 첫 흑인 국방수장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바이든 당선인은 그를 공식 지명하면서 "미 현역 군인의 40% 이상이 유색인종이다. 국방부 지휘부에 다양성을 반영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라고 말했다.
더힐은 "흑인 지도자들이 다양성 내각 공약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가운데 바이든은 국방장관에 흑인을 지명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의회가 '민간의 군 통제' 명분을 앞세울지, 역사적 의미를 새겨 그를 인준할지 두고 볼 일이다.


honeyb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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